트라이쇼를 타고 조지타운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트라이쇼를 타고 조지타운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페낭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아기자기한 벽화, 군침이 꼴깍 넘어가게 하는 고소한 냄새가 한꺼번에 달려들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페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지타운에는 세월을 품은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내게는 세 명의 말레이시아 친구가 있다. 이름은 웨이팅, 로자나 무함마드, 베론. 모두 말레이시아 국적이지만 종교는 불교, 이슬람, 힌두교로 다르다. 웨이팅은 할아버지가 중국 푸젠성에서 넘어온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고, 베론은 할아버지가 인도 타밀 출신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이다. 로자나만 말레이 토박이다. 얼굴 생김도 비슷한 부분이 거의 없다. 세 친구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진정한 매력이 다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인종 종교 음식 ‘문화의 용광로’

페낭은 다채로운 말레이시아의 멋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문화가 펼쳐진다. 모스크 건너편에 힌두사원이 있고, 한 블록 떨어진 자리에는 교회가 있다. 일상의 공간에서도 문화가 섞인 모습을 쉽게 만난다. 테이블에 올라온 국수 아삼락사 한 그릇에 중국 요리법과 말레이 식재료가 사이좋게 녹아 있다.
조지타운 북쪽 프렌드십 파크 안에 있는 포토존
조지타운 북쪽 프렌드십 파크 안에 있는 포토존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100년 넘은 중국식 저택에 머물렀는데, 방마다 유럽 성당에서나 볼법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아기자기한 타일 장식도 독특했다. 한 가지 스타일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페낭 자체가 퓨전이라고나 할까. 페낭을 여행할수록 궁금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먹고 싶은 음식이 늘어나는 이유다.

페낭이 무지갯빛 매력을 품게 된 배경에는 파란만장한 역사가 숨어 있다. 1786년 영국의 프랜시스 라이트 선장이 페낭에 발을 디딘 뒤, 영국은 페낭을 무역거점으로 삼았다. 기회를 찾아 이슬람 상인과 중국 무역상이 몰렸고, 18세기에는 아편 무역 중심지로 암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 사람들은 주석광산과 고무플랜테이션을 위해 인도와 중국에서 노동자를 데려왔다. 자연스럽게 말레이 본토 사람과 중국, 인도에서 온 이민자들이 섞여, 그들의 문화를 형성했다.

조지타운은 숨 쉬는 야외 박물관

조지타운의 중심 카피탄 클링 모스크
조지타운의 중심 카피탄 클링 모스크
여행의 시작은 ‘페낭의 노른자’ 조지타운이다. 조지타운은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낡은 건물과 오래된 길이 조지타운을 풍성한 이야기의 바다로 만든다. 조지타운의 중심 피트스트리트에 가면, 카피탄 클링 모스크가 눈을 사로잡는다. 페낭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모스크다. 무굴제국 스타일로 건축해 지붕이 타지마할처럼 둥그렇다. 웅장한 모스크는 기도하러 온 이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모스크 부근에는 노란 꽃이 주렁주렁 달린 꽃집이 있다. 힌두사원에 바칠 성물이다. 누군가 이 꽃을 건너편 스리 마하 마리암만 힌두사원에 올릴 것이다. 스리 마하 마리암만 사원은 마리암만 신을 기리는 힌두 사원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고푸람을 보니 고향을 떠나 멀리 일하러 온 인도 사람들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힌두사원에서 멀지 않은 자리에 관음사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인 세인트조지교회가 있다. 한 거리에 이슬람과 힌두교, 기독교, 도교 사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페낭의 다양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피트 스트리트를 ‘하모니 스트리트’라고 부른다더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향 진한 리틀인디아, 웅장한 쿠콩시

피트 스트리트에서 여러 종교를 만난 후 북동쪽 항구에 있는 콘월리스 요새로 향한다. 이곳은 1786년 프랜시스 라이트 선장이 상륙한 지점으로, 100여 년 전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시원한 풍경과 숲 덕분에 산책하기도 좋다. 콘월리스 요새를 둘러보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리틀 인디아를 만난다. 흥겨운 볼리우드 풍 음악이 거리에 깔리고 진한 향이 와락 달려든다. ‘뭄바이 패션’ ‘델리 패션’이라고 쓰인 가게에는 화려한 장신구와 형형색색의 사리가 걸려 있어, 이곳이 말레이시아인지 인도인지 잠시 헷갈린다.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문화인 페라나칸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페라나칸 맨션도 멀지 않다. 페라나칸은 중국 남성과 말레이시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통칭한다. 페라나칸 맨션은 19세기 중국 부호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당시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골동품과 수집품을 전시한다. 흥미로운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청팟츠 맨션이다. 인디고 블루로 칠한 외관부터 강렬하다. 38개의 방과 5개의 중정, 220개의 창문을 갖춘 대저택이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촬영지로 등장했으며, 지금은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페낭에는 푸젠성에서 온 이민자가 많다. 이들이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문중고택을 짓는 일이었다. 조지타운에는 다섯 개의 문중고택이 남아있는데, 이 중 쿠콩시가 가장 웅장하다. 붉은 기와지붕 아래 화려한 기둥, 정교한 조각을 차례로 훑다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층에는 중국 이민자들이 페낭에 정착한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마련돼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함께 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