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슨은 권력을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것을 수탈해 내 것으로 만드는 힘’으로 파악했다. “모든 권력자의 행동 유인은 이기심이며, 권력이 국민 재산권 보호에 나서는 것은 생산의욕을 고취해 장기적으로 더 많이 수탈하기 위해서”라고 진단했다. 이익집단, 권력, 국가에 대한 《권력과 번영》의 이 같은 도발적 관점은 정치학·사회학에서도 여러 논점을 형성시켜 사회과학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
"권력은 정주형(定住型) 도적일 뿐"
독재권력이든 민주권력이든 모든 권력은 권력에서 소외된 집단을 수탈한다는 게 올슨의 시각이다. ‘유랑형 도적’과 ‘정주형 도적’에 비유하며 권력의 속성을 설명한 이유다. 유랑형 도적은 강도질로 얻은 이익을 누릴 뿐 그로 인한 ‘사회적 생산 감소’라는 폐해에는 무관심하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뿌리내린 정주형 권력은 많은 경우 세율을 낮추고 생산의욕을 고취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공공재 투자에도 큰 관심을 갖는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추가 조세 수탈액이 공공재 공급비용을 웃돌기 때문이다. 올슨은 권력 운영상의 이런 변화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빗대 ‘보이지 않는 왼손’이 작용한 결과라고 표현했다.
올슨은 “유랑형 도적을 거쳐 정주형 도적으로 자리잡은 전형이 전제군주제”라며 “권력의 매서운 수탈은 체제 붕괴를 부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로마제국, 오스트리아-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 프랑스 부르봉 왕조 등의 멸망은 조세 수탈 과잉의 결말이었으며, 소련 몰락의 본질도 과도한 수탈이다.”
민주적 정치체제에서도 다양한 수탈이 상존한다는 게 올슨의 견해다. “전제군주는 소수의 지배계급 구성원과 수탈물을 독식하지만, 민주적 권력은 수탈 이익을 수많은 지지자 그룹과 나눠 가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권력과 번영》은 조직화된 소수 이익집단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효율의 증대를 강하게 비판한다. 정책학습 비용이 해당 정책으로 얻을 편익보다 훨씬 큰 탓에 시민 다수는 공부를 외면하며 ‘합리적 무지’로 치닫고, 그 틈새를 이익집단이 파고든다는 게 올슨의 진단이다. “이익집단들은 대중을 겨냥한 집요한 로비 활동과 요식적 투표를 통해 국민 다수의 소득을 가로채고 사회 전체의 성장을 잠식해간다”며 ‘영국병’에 시달린 대영제국을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특권적 이익집단의 로비는 독재자의 수탈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올슨의 생각은 하이에크에게로 이어졌다. 하이에크는 “현대사회의 진짜 착취자는 민주주의를 부패시킨 이익집단”이라며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는 헌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올슨은 국민 각자의 재산권과 계약권을 지배권력 집단의 수탈로부터 보호하는 ‘좋은 시장’의 유무가 한 사회의 번영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서독 일본 이탈리아가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것은 패전으로 부패 기득권 구조가 붕괴하면서 시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옛 소련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한 러시아의 부진은 오랜 특권 구조가 마피아체제 등으로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좋은 시장 외 번영의 지름길 없어"
《권력과 번영》은 “선진국부터 빈곤국까지 모든 나라에서 ‘시장’이 작동 중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성공적인 시장경제를 위한 두 가지 핵심 요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안정적이고 잘 정의된 개인적 권리다. “토착민이든 외국인이든, 개인이든 법인이든 모든 참여자가 자신이 선택한 계약의 공평무사한 집행권을 가질 때 시장은 생산잠재력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 둘째 요건은 강탈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권리가 최고 수준으로 보장된 국가에서도 강탈이 자행된다는 게 올슨의 견해다. “선진국에서의 강탈은 가격이나 임금을 결정하는 카르텔과의 공모, 특별한 이익을 추구하는 입법과 로비를 통해서 은밀하게 이뤄진다.”
이 책의 방점은 섬세하게 개인의 재산권과 계약권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인공 시장’의 설계에 맞춰졌다. 지배권력이 고도의 글로벌 분업으로 재산권이 얽히고설키는 시대 변화에 걸맞은 시장 시스템 구축을 외면하는 사회는 경제적 쇠락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풍요의 길은 자본·자원·인구가 아니라 ‘좋은 시장’이 결정하며, 풍요의 적은 특권에 매달리는 권력과 이익단체라는 게 이 책의 일관된 메시지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