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징크스 혹은 미신, 간절함에 대하여
벌써 올해도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유난히 더웠던 작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여름 끝에 오는 가을을 반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다른 무더위에 장마가 지나가는 한여름이 됐다.

이렇듯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다음달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이달의 달력을 넘겨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징크스 같은 것이 있다. 새로운 달이 시작되기 전에 달력을 넘겨야 새로운 달도 잘 풀릴 거라는 행동이 나의 징크스가 됐다. 그래서 월말이 다가오면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내 주위에 보이는 모든 달력을 얼른 넘겨 버린다. 어쩌다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지난달의 달력이 보이면 찝찝한 생각이 들곤 한다.

지인 한 분은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경기에 관한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자신이 경기를 보면 꼭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20세 이하 월드컵 마지막 경기는 너무 응원하고 싶어서 봤는데 역시나 우리 대표팀이 패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징크스 혹은 작은 미신을 갖고 산다. 예컨대 시험 보는 날에는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든지, 현관의 신발은 집 안쪽을 향해 있어야 한다든지, 중요한 면접이 있을 때 입는 속옷은 따로 있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 계약을 앞둔 비즈니스맨, 시험을 앞둔 수험생 등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미신처럼 집착한다.

우리는 흔히 징크스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징크스에 집착하는 사람을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나 노력 없이 요행만 바라는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행동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소한 행동이나 의식을 통해 노력이나 바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말이다.

징크스 혹은 자기만의 작은 미신 등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작은 행동으로 불행이 비껴가리라는 믿음이 불필요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오히려 자신감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달력을 넘기는 나만의 징크스를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딱히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빨리 잊고 새로운 시간에 더 매진함으로써 더 나은 달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이 이런 행동을 이끄는 것이라면 매월 말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기저기 걸려 있는 달력을 얼른 넘기는 작은 수고쯤은 기꺼이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매번 다시 들을 필요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