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이라크 수교 30주년을 맞아 이라크를 다녀왔다.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해 섭씨 4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차에 올랐다. 대통령, 총리, 주요 정당 지도자들을 만나고 쿠르드 지역도 방문해 한국과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래된 지도 한 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알 이드리시 지도’였다.
이라크 방문 마지막 날 바그다드 박물관에서 천 년 전, 세계 최초로 신라가 표기된 알 이드리시 지도를 만나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도는 한국이 세계와 교류한 역사를 수백 년 앞당기는 소중한 사료다. 이라크로 떠나기 전 바그다드 박물관에 전시 여부를 확인했지만 “전시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차 이라크 정부에 지도 열람을 요청했고, 출국 마지막 날 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나보게 된 것이다.
문명교류학자 정수일 선생은 1979년 레바논에 체류할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물들로 유명한 바그다드 박물관에서 알 이드리시 지도를 접했다. 이 지도는 이라크과학원이 1951년 대형으로 복원,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지도에 여섯 개의 점으로 한국(신라)이 표기된 부분을 보고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유럽 세계지도에 한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스페인의 벨로가 1562년 제작한 세계지도로 알려졌다. 한국명이 적힌 최초의 유럽 지도는 메르카토르 세계지도(1595년)였다. 그런데 알 이드리시 지도는 그보다 441년 앞선 1151년에 아랍어로 정확하게 신라를 표기한 것이다.
신라는 9세기 아랍을 포함한 중동과 유럽 세계에 ‘동방의 이상향’으로 알려졌다. 정 선생이 쓴 《세계 속의 한국》에서 알 이드리시는 “그곳(신라)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정착해 다시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곳이 매우 풍부하고 이로운 것이 많은 데 있다. 금(金)은 너무나 흔하고, 심지어 그곳 주민들은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신라는 이미 세계와 교류하고 있었고 세계인이 감탄할 만큼 찬란한 문명을 간직하고 있었다.
천 년 전 아랍 등 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했던 신라의 역사를 이역만리 이라크 땅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세계화 시대를 선도하는 무역국가 한국의 DNA는 신라 땅에서부터 형성된 게 아닐까. 알 이드리시 지도를 통해 ‘은둔의 나라’가 아닌, 세계를 향해 열린 한국의 역동적인 모습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