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性慾은 인간의 본질…클림트를 이해하다
세기말(世紀末)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한 세기의 끝’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말세’와 통한다. 가치관의 붕괴로 사상이나 도덕, 질서 따위가 혼란에 빠지고 퇴폐적, 향락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시기다.

역사적으로, 특히 문화예술사적으로 세기말은 이 두 의미를 모두 가진 19세기 말 유럽을 가리킨다. 홍진호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저서 《욕망하는 인간의 탄생》에서 “유럽인들에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종교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붕괴되며 찾아온 가치의 아노미 상태에서 새로운 가치 기준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내용은 ‘세기전환기 독일어권 문학에서 발견한 에로틱의 미학’이란 부제에 함축돼 있다. 홍 교수는 사회의 기반 위에서 모든 문학과 예술이 탄생한다는 관점에서 격변기 독일 사회와 문학 간의 흥미로운 관계를 이 시기에 쓰인 대표적인 독일 문학 텍스트 12편을 통해 깊이 있게 탐구한다. 책은 “클림트는 왜 작품마다 에로틱한 표현에 그토록 집착했을까?”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기전환기 독일 문학에 성과 에로틱이 주요 소재로 나온다. 성에 대한 일반적 관심이 새삼스럽게 증가한 것이라기보다 성 문제가 주류문화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19세기 자연주의 이후 인간이 자연 일부로 이해됐고 인간의 자연적 본질은 성 욕망에 존재한다는 인간관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 성이 단순히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소재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연적 본질의 핵심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서두의 화두에 답한다. 클림트의 그림은 단순히 개인적 취향에서 여성의 나신을 에로틱하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인간관을 온전히 반영해 인간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전문적이고 복합적인 내용을 담았지만 선행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독일 문학과 예술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어썼다. 문학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인문교양서다. (21세기북스, 424쪽, 2만3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