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나 집단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화두와 현안이 무엇인지 짚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사회적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 담론과 역동적 에너지로 뜨거운 사회냐, 과거의 논란에 사로잡힌 채 한 줌의 이권(利權)을 놓고 치고받는 사회냐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가다듬고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모습은 후자(後者)에 가까움을 부인하기 힘들다. 사회 곳곳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공론(空論)으로 시끄러운 데 더해, 특정 시설의 유치·퇴거를 둘러싼 집단이기주의 마찰까지 속출하고 있어서다. 10여 년의 극심한 혼란 끝에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다른 곳에 지어야 한다”는 부산·울산·경남과 “안 된다”는 대구·경북 지역의 새삼스러운 갈등은 특히 걱정스럽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장 교체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도 동남권 신공항을 국무총리실에서 재검토키로 한 정부 결정은 이해하기 힘들다. 역대 선거 때마다 주요 공약에 오를 만큼 ‘뜨거운 감자’였던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가닥잡기까지 사회적 갈등비용이 얼마나 컸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직전 박근혜 정부에서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하는 엄정한 과정을 거친 국책사업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재검토 반대’의사를 불과 두 달 전에 공개 표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힘 있는 정치인 몇몇이 담합해 국가적 프로젝트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무시하는 행태다. 누구보다도 지역 간 갈등의 중재자가 돼야 할 정부가 논란과 대립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정치권과 온갖 이익집단의 개입으로 갈등이 증폭되는 일이 이번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시설임에도 집값·땅값에 불리할 것 같으면 갖가지 구실을 붙여 봉쇄하는 ‘님비(NIMBY: 우리 집 뒤뜰은 안 돼)’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2년 전 서울에서는 발달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장애아동 부모들이 지역민들에게 무릎 꿇고 호소하는 눈물겨운 장면이 연출됐다. 최근에는 경기 오산에서 정신병원 개원을 막아선 지역 국회의원이 의사들에게 ‘막말’을 퍼붓고 협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같은 갈등과 대립의 기저에는 편견과 혐오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을 왜곡한 선동이 난무하고 한 줌도 안 되는 이권 때문에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한 사회의 문명적 성숙도를 떨어뜨리는 야만임에 틀림없다. 이런 야만은 사회적 갈등 증폭은 물론이고 건강과 활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거짓 선동과 충동이 발붙일 수 없게 하고, 이권 다툼으로 공동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적극 설득하고 중재하는 일은 국가 운영을 위임받은 정부의 중요한 소임(所任)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결합하고 융합해 새로운 문명 장치를 일궈내는 4차 산업혁명이 요동치는 시대다. 국가 구성원들의 지혜와 창의를 북돋아 자유와 번영이 충만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할 때다. “정부가 있어야 할 곳에서는 보이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만 나댄다”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