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가 연구자들의 중국 인재유치 프로그램 참여를 금지했다. 중국이 각종 연구 지원을 통해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 인력과 이들이 가진 지식을 빼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관세전쟁, 기술전쟁, 환율전쟁으로 확산된 미·중 갈등이 ‘두뇌전쟁’으로까지 번진 것으로 분석됐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는 직원은 물론 미 정부와 계약을 맺은 연구자들에게 ‘중국 등 미국에 적대적인 외국 정부가 후원하는 인재유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구원에 대해선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든지, 미 정부 관련 일을 그만두든지 양자택일을 하도록 했다.

에너지부는 미 행정부 내 과학기술 부문 핵심 부처다. 기초과학부터 핵무기 성능 개선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지원한다. 17개 국책 연구소를 관할하며 약 1만5000명의 연방정부 직원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정부와 계약을 맺은 연구자만도 1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이번 조치에 따라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미국에 적대적인 외국 정부가 후원하는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부의 이번 조치는 최근 미 연구원들이 중국의 해외 군사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해 고액 연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뒤 나왔다고 WSJ는 전했다. 에너지부에 따르면 외국 정부는 미국 연구자들에게 적게는 수십만달러, 많게는 수백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요주의 대상으로 삼은 건 중국의 ‘천인(千人)계획’이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2008년 시작한 해외 인재 영입 프로젝트다. 대상에 오른 연구자에겐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천인계획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미국 정부 관련 연구원만 300명 이상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미국 연구자뿐 아니라 다른 외국 국적을 가진 연구자들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에너지부가 중국 인재유치 프로그램에 경계령을 발동한 배경이다. 에너지부는 지난 2월에도 정부 소속 연구원이나 정부와 계약한 연구자들이 외국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이를 신고하도록 했다.

다른 기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 여름 1만 개 이상의 연구기관에 연방 보조금 수령자가 외국 정부나 단체와의 제휴 상황을 제대로 보고했는지 파악하도록 했다. 국립과학재단(NFS)도 과학 교류와 국가 안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외국 정부가 포함된 외부 지원의 연구 투명성을 개선하기로 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