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문재인 표' 3대 신산업 전략의 성공조건
“역대 정부에서 신산업을 남긴 것은 DJ(김대중) 정부의 ICT(정보통신기술)가 유일하다. 3대 산업(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미래차)을 문재인 정부의 유산으로 남기겠다는 각오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핵심 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3대 육성산업을 강조하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3대 산업을 선정한 기준도 상세히 밝혔다. “우리 기업이 세계 톱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 자본력을 갖춘 기업군이 있는 분야 가운데 고용창출 효과가 높고 중소기업과 상생 생태계를 갖출 수 있는 기준에서 선정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이해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사업장 방문 이후 공개석상마다 매번 이들 3대 산업 육성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 14일 중소기업인대회에서도 “최근 연달아 육성책이 발표되고 있는 미래차,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주력 산업”이라며 전방위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2년 동안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분배형 경제를 강조하던 모습에 익숙한 국민들로서는 청와대의 이런 기류변화가 생경하기까지 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인들이 “대통령의 3대 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가 정말 확고하냐”며 되묻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임기 3년차를 맞은 청와대의 산업정책에 대한 기류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일각에선 성과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지는 ‘3년차 증후군’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발언과 참모들이 산업정책에 접근하는 자세가 이전 2년과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삼성전자 방문을 두고 일부 진보진영에서 ‘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 대담에서 “대기업 만나면 친대기업이고, 노동자를 만나면 친노동자인가”라며 “그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참모들과의 비공개 자리에서는 이보다 한층 격앙된 표현까지 써가며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대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앞으로 대통령의 행보에 그런 의지가 충분히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미래 먹거리를 육성하는 산업정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반길 일이다. 지난 2년간의 ‘소주성’을 둘러싼 소모성 논쟁에 비교하면 진일보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청와대의 산업정책 의지에 갸웃거리는 모습이 적지 않다. “통계와 현장의 온도차가 있지만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대통령의 경제 인식도 의구심을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경제는 심리인데 대통령이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만 하라는 것이냐”고 항변하지만 대안을 찾으려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문 대통령의 3대 신산업 육성 의지도 냉정한 현실 인식이 뒷받침될 때 시장에 진정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책사로 꼽히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정책 성과가 좋지 않으면 먼저 통제를 강화하고 그다음 전략을 수정하지만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신념과 철학의 전환인 데다 결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새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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