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중해 자원 전쟁
지중해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3대륙을 잇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고대부터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 문명의 접경지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지배하면 연안의 각 대륙을 장악할 수 있기에 국가 간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기원전 트로이 전쟁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도 여기서 벌어졌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또 다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 분단 상태인 키프로스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지난 3월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발견된 이후 역내 국가 간의 자원 전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근 터키가 키프로스 북부 지역의 연고권을 주장하며 이 해역 시추에 나섰고 키프로스와 그리스, 유럽연합, 미국 등이 이에 맞서고 있다.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에서도 추정 매장량 최대 30조 입방피트의 대규모 가스전이 발견됐다. 원유로 환산하면 한국의 연간 석유 수입량(9억4000만 배럴·2018년)의 5배가 넘는 약 55억 배럴에 이른다. 2015년에 이 가스전을 발견한 이집트는 최근 이스라엘과 키프로스, 요르단, 그리스 등 주변 7개국을 모아 ‘동지중해 가스포럼’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앞서 2009년과 2010년에 16조1000억 입방피트의 천연가스전을 확보하고 올해부터 이집트와 요르단 등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지중해를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과거 수차례 중동 전쟁으로 앙숙이었던 양국 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유럽 국가들은 지중해 일대의 잇단천연가스 발견을 크게 반기고 있다. 그동안 천연가스 생산량 1, 2위인 러시아와 이란에 거의 절대량을 의존해왔기에 새로운 공급자를 찾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이들 국가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이런 난제를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중해의 천연자원이 유럽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까지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다행히 우리에게도 일말의 희망이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키프로스 해역 에너지 탐사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직은 지분 20%를 획득하고 탐사정 시추를 위해 시추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다. 전문가들은 이 해역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의 거대 가스전이 발견됐기 때문에 승산이 충분하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도 이 해역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중생대 테티스해 주변지역이다. 게다가 탐사 초기 개척 지역이어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그러고 보면 세계 에너지 전쟁 지도에서 지중해는 우리에게 그리 먼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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