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금융회사 주식이 헐값인 이유
한국에는 금융지주회사, 은행, 증권 등 다양한 이름의 금융회사가 있다. 요즘 떠오르는 사모펀드나 핀테크 회사도 있다. 이들 금융회사 중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은 2018년 말 기준 272조원이다. 전체 상장회사 시가총액 1572조원의 17.3%에 달한다. 대부분 강력한 노조가 있고, 그 덕에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 훌륭한 근무 환경을 자랑한다.

이 회사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금융산업이라 하고, 이 금융산업은 금융감독원이라는 무자본 특수법인에 의해 관리 감독된다. 그리고 정부조직인 금융위원회가 금융산업 전반에 관한 정책 수립, 법령의 제·개정 및 금감원에 대한 감독 기능을 담당한다.

이 거대한 산업을 조금 더 파고들어가다 보면 일반인은 잘 모르는 재미있는 사실들이 발견된다. 우선 해외 진출 상황이다. 한국의 주요 산업 중 해외 진출이 가장 부진한 분야가 금융산업이다. 전자, 자동차, 조선·기계, 화학 등 대형 산업은 거의 예외없이 해외 진출을 통해 몸집을 키웠지만 유독 금융산업은 안방호랑이 노릇에 안주해왔다. 2018년 우리나라 은행들의 해외 점포 순이익은 9억8300만달러로 국내 은행 전체 순이익의 8%밖에 안 되는데, 그나마도 전년 대비 22%나 증가한 것이다.

또 다른 사실은 어느 회사, 업종 할 것 없이 주식 가격이 형편없이 싸다는 것이다. 이익도 많이 나고 좋은 사무실에서 높은 급여 수준을 자랑하는 금융회사들의 주가가 헐값이라면 많은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주가가 싼가, 비싼가를 판단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그 회사 주식의 시가총액을 장부가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의 장부상 순자산이 100억원인데 시가총액이 200억원이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0이다. 대개 주식시장은 회사의 미래가치가 현재 장부가치보다 높다고 보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어서 시장 전체의 PBR은 1.0을 넘는 것이 일반적이고,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첨단기술 업종은 PBR이 다섯 배, 열 배를 넘는 사례도 흔하다.

2018년 말 기준 몇몇 국가의 시장 전체 PBR을 보면 한국은 0.87, 일본은 1.04, 미국은 2.97이다. 한국 기업의 미래를 그리 밝게 보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 기업 중에서도 미래 전망에 따라 PBR이 크게 차이 나는데, 예를 들어 삼성생명의 PBR은 0.51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1.10, 삼성바이오로직스는 6.15다. 셀트리온처럼 열 배를 넘는 회사도 상당수 있다.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 것은 금융회사의 PBR이다. 2018년 말 기준 한국의 은행업 전체 PBR은 0.44, 증권업은 0.74, 보험업은 0.75로, 비중이 큰 은행 부문의 PBR이 낮은 탓에 금융산업 전체 PBR은 0.5 수준이 된다. 일본은 한국보다 약간 나은 정도지만 미국은 JP모간이 1.39, 다른 은행도 1.0 수준을 보인다.

이렇게 한국 금융회사 주식이 푸대접을 받는 근본적 이유는 금융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있다. 물론 금융회사들의 고비용 구조, 혁신능력 부족 같은 내재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나 결정적인 것은 금융당국의 금융산업에 대한 자세 문제다.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는 금융산업을 국제 경쟁력이 필요한 ‘산업’으로 보기보다 부동산 정책,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정책의 도구로 활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와 위험관리라는 명분으로 금융회사들의 사소한 일까지 감시·감독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금융회사로서는 혁신할 필요도, 위험 부담을 질 이유도 없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금융당국이 금융산업을 직접 경영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온 성적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모든 학생의 성적이 골고루 나쁘다면 교육당국이나 담임선생님의 책임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금융산업이 1.0 수준의 PBR을 찾아가도록 시장과 금융당국이 노력한다면 우리 주식시장은 270조원에 달하는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탄탄한 발판을 구축한다면 전자와 자동차 못지않은 수출산업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깝고 억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