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강제동원돼 해저 탄광에서 일하다가 수몰사고로 숨진 한반도 출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재(慰靈齋, 위령제의 불교식 표현)가 13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에서 열렸다.

주일 히로시마(廣島) 총영사관에 따르면 대한불교 관음종은 이날 조세이(長生)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모광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불교계 인사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유족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재를 올렸다.
日 해저탄광 수몰 징용 조선인 위령재…"비통한 죽음 위로"
조세이탄광은 1942년 2월 3일 작업 중 해저 갱도가 무너지는 붕괴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사고로 조선인 징용피해자 136명 등 모두 183명이 수몰됐으며 유골은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채 해저에 묻혀 있다.

이날 위령재에서 홍파 관음종 총무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탄광이 무너져 내린 뒤에도 이곳의 바다 밑은 싸늘한 암흑의 고통스런 모습으로 여전하다"며 "바닷속 영령들을 수면 위로 그리고 고향의 품으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표 히로시마 총영사는 "조세이탄광의 수몰사고는 강제노동에 내몰린 사람들의 비극을 대변한다"며 "역사에 새겨진 인간 비극의 한 사례로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기린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주호영 의원은 "일본 제국주의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당시 일본의 만행으로 생긴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면서 "비좁은 갱도에 육신을 뉘인 채 구천을 떠돌고 계실 고인들의 비통함과 억울함은 짐작하기도 어렵다"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조세이탄광 사고는 일제의 진주만 기습(1941년 12월)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지 2개월만에 발생했다.

당시 일제는 국민 사기 저하를 우려해 사고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다.

이후 1970년대 후반 양심적인 우베시 시민들이 나서서 조사와 연구를 펼쳐 당시의 비극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유골 발굴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日 해저탄광 수몰 징용 조선인 위령재…"비통한 죽음 위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