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R까기] 146페이지의 '주택청약 질문집'을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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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지난 2월8일 자료 내놔
예외·세부내용 다뤘지만, 방대하고 숙지 어려워
수요자들에게 '부적격자' 책임 묻는 게 정당한가
예외·세부내용 다뤘지만, 방대하고 숙지 어려워
수요자들에게 '부적격자' 책임 묻는 게 정당한가
"생각지도 못한 부적격자가 정말 많습니다. 아깝게 통장을 날린 게 되는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파트 분양현장에 관계자의 얘기다. 이러한 얘기는 어느 현장이나 공통적이다. 규제가 많은 투기과열지구는 물론 비규제지역까지 말이다. 특별공급도 인터넷으로 청약을 받고, 전매도 금지된 지역들이 많다보니 현장에서 처리할 주요 업무는 '부적격자 가려내기'다.
현장에서는 부적격으로 의심이 되고 해당 청약자에게 전화를 하다보면 난감하다고 입을 모은다. 분명히 '고객'들인데 대학입시 합격여부를 알려주듯이 '통보'할 수 밖에 없어서다. 통보받는 쪽도 기분은 상한다. '부적격'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자격도 안되는 데 뭔가 불법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뉘앙스가 풍겨서다. 좀 더 친절하고 쉬운 청약제도라면 서로 속상한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무수히 쏟아지는 부적격자와 복잡한 청약제도를 해설하겠다고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내놓은 자료가 있다. '주택청약 및 주택공급제도 관련 자주묻는 질문(FAQ)'라는 파일이다. 누구나 볼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다운을 받고 나면 분량이 두눈을 의심할 정도다. 무려 146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이다. 파일을 1페이지부터 살펴보다가 프린트를 해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인쇄를 시작했지만, 거의 150페이지를 뽑기는 만만치 않았다. 쌓여있는 종이가 2cm를 넘었다.
"이거 언제 읽으려고?", "뭔데 이렇게 두꺼워?"….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일반적인 문답(Q&A)이 아니라 자주묻는 질문이 뭐 이리 많은가. 청약제도 개편은 작년말이었는데 두 달 가량 시간이 흘러 나온 자료다. 연말 소득공제와 관련된 FAQ를 뺨치는 수준의 두꺼운 자료들이었다. 더 기막힌 건 표지였다. "다음의 질의답변은 법개정, 법령해석 변경 또는 부동산 대책에 따라서 사전 예고없이 변경될 수 있으며 법적 효력이 없으므로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공급규칙 개정에 따라 내용을 수정했으나,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참고는 하되 절대적으로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예시로 나와 있는 질문은 216개였다. 항목마다 세부 질문들이 있기 때문에 실제 질문개수는 이보다 많다. 하나 하나 읽어내려가다보니 질문이 아니라 '사연'을 읽는 것 같았다. 부동산을 둘러싼 가족들간의 사연으로 인해 청약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대책발표에서 소외됐던 도시형생활주택이나, 무주택기간·전매제한기간 등과 같은 날짜 계산방법, 재당첨 제한 등의 내용이 많았다.
최근 현장에서 혼돈이 많은 점이 작년말 개정된 주택청약과 관련된 내용이다. 작년말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과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분양권도 주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예외조항을 내놓기도 했다. "미분양 분양권을 최초로 계약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주택으로 산정하지 않는다. 미분양 분양권을 최초로 계약한 사람에게 매수한 경우는 유주택자로 간주된다"라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청약부담과 주택수 부담없이 미분양 분양권을 매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분양 주택이라도 분양권은 주택수에 산정된다는 게 FAQ의 내용이다. 210번 질문에 이 내용은 상세히 나와 있다. 미분양이라고 하더라도 청약에서 경쟁이 있었다면 '분양권은 주택'이다. 청약에서부터 미달이 난 주택에서 나온 분양권만이 주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최근 일부 현장을 중심으로 "어설픈 청약 마감 보다는 '미달'이 낫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적극적인 수요자들 사이에서도 '줍줍(줍고 줍는다의 신조어)해서 함부로 먹다가 체한다'는 말도 여기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얘기다. 평소에 자기 일을 하면서 청약점수를 차곡차곡 모아서 내집 마련을 시도하려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들은 아마도 이러한 FAQ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인 청약제도를 숙지하고, 예외와 세부조항을 모아놓은 146페이지까지 이해하고 청약에 뛰어드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금융업계에서는 '불완전판매(mis-selling)'가 될 시에는 금융소비자가 아닌 금융회사가 책임을 진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청약을 했을 때 당사자가 '부적격자'로 낙인 찍힌다. 부적격자는 한동안 청약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청약제도이고, 누가 제대로 이해를 해야하는지를 곱씹어볼 문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아파트 분양현장에 관계자의 얘기다. 이러한 얘기는 어느 현장이나 공통적이다. 규제가 많은 투기과열지구는 물론 비규제지역까지 말이다. 특별공급도 인터넷으로 청약을 받고, 전매도 금지된 지역들이 많다보니 현장에서 처리할 주요 업무는 '부적격자 가려내기'다.
현장에서는 부적격으로 의심이 되고 해당 청약자에게 전화를 하다보면 난감하다고 입을 모은다. 분명히 '고객'들인데 대학입시 합격여부를 알려주듯이 '통보'할 수 밖에 없어서다. 통보받는 쪽도 기분은 상한다. '부적격'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자격도 안되는 데 뭔가 불법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뉘앙스가 풍겨서다. 좀 더 친절하고 쉬운 청약제도라면 서로 속상한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무수히 쏟아지는 부적격자와 복잡한 청약제도를 해설하겠다고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내놓은 자료가 있다. '주택청약 및 주택공급제도 관련 자주묻는 질문(FAQ)'라는 파일이다. 누구나 볼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다운을 받고 나면 분량이 두눈을 의심할 정도다. 무려 146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이다. 파일을 1페이지부터 살펴보다가 프린트를 해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인쇄를 시작했지만, 거의 150페이지를 뽑기는 만만치 않았다. 쌓여있는 종이가 2cm를 넘었다.
"이거 언제 읽으려고?", "뭔데 이렇게 두꺼워?"….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일반적인 문답(Q&A)이 아니라 자주묻는 질문이 뭐 이리 많은가. 청약제도 개편은 작년말이었는데 두 달 가량 시간이 흘러 나온 자료다. 연말 소득공제와 관련된 FAQ를 뺨치는 수준의 두꺼운 자료들이었다. 더 기막힌 건 표지였다. "다음의 질의답변은 법개정, 법령해석 변경 또는 부동산 대책에 따라서 사전 예고없이 변경될 수 있으며 법적 효력이 없으므로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공급규칙 개정에 따라 내용을 수정했으나,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참고는 하되 절대적으로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예시로 나와 있는 질문은 216개였다. 항목마다 세부 질문들이 있기 때문에 실제 질문개수는 이보다 많다. 하나 하나 읽어내려가다보니 질문이 아니라 '사연'을 읽는 것 같았다. 부동산을 둘러싼 가족들간의 사연으로 인해 청약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대책발표에서 소외됐던 도시형생활주택이나, 무주택기간·전매제한기간 등과 같은 날짜 계산방법, 재당첨 제한 등의 내용이 많았다.
최근 현장에서 혼돈이 많은 점이 작년말 개정된 주택청약과 관련된 내용이다. 작년말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과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분양권도 주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예외조항을 내놓기도 했다. "미분양 분양권을 최초로 계약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주택으로 산정하지 않는다. 미분양 분양권을 최초로 계약한 사람에게 매수한 경우는 유주택자로 간주된다"라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청약부담과 주택수 부담없이 미분양 분양권을 매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분양 주택이라도 분양권은 주택수에 산정된다는 게 FAQ의 내용이다. 210번 질문에 이 내용은 상세히 나와 있다. 미분양이라고 하더라도 청약에서 경쟁이 있었다면 '분양권은 주택'이다. 청약에서부터 미달이 난 주택에서 나온 분양권만이 주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최근 일부 현장을 중심으로 "어설픈 청약 마감 보다는 '미달'이 낫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적극적인 수요자들 사이에서도 '줍줍(줍고 줍는다의 신조어)해서 함부로 먹다가 체한다'는 말도 여기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얘기다. 평소에 자기 일을 하면서 청약점수를 차곡차곡 모아서 내집 마련을 시도하려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들은 아마도 이러한 FAQ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인 청약제도를 숙지하고, 예외와 세부조항을 모아놓은 146페이지까지 이해하고 청약에 뛰어드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금융업계에서는 '불완전판매(mis-selling)'가 될 시에는 금융소비자가 아닌 금융회사가 책임을 진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청약을 했을 때 당사자가 '부적격자'로 낙인 찍힌다. 부적격자는 한동안 청약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청약제도이고, 누가 제대로 이해를 해야하는지를 곱씹어볼 문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