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이 줄고 설비투자가 급감하면서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공장이 일감 부족으로 문을 닫은 모습. /한경DB
생산이 줄고 설비투자가 급감하면서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공장이 일감 부족으로 문을 닫은 모습. /한경DB
경제 지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고용 생산 투자 소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이다. 지표에 나타나는 숫자도 상당수가 외환위기(1997년)나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이는 등 기록적인 수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위기론이 과장됐다고 방어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지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설비 감축해도 가동률 하락

산업연구원이 13일 발표한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 매출 전망은 85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6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전 분기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의미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생산·고용·투자·소비…경제지표마다 환란·금융위기 이후 '최악'
제조업 전망이 암울하다는 것은 평균 가동률을 봐도 알 수 있다. 작년 11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7%로 전월(73.8%)에 비해 1.1%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 가동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7.6%까지 곤두박질쳤다가 이후 회복세를 보여 2011년 80.5%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떨어지기 시작해 작년 1~11월 평균 가동률은 72.9%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경기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경기가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작년 11월 반도체 출하지수는 전달 대비 16.3% 내려 2008년 12월에 18.0% 하락한 후 9년11개월 사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제조업체들이 불경기 때문에 설비를 감축하는데도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민성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 말 삼성전자의 어닝 쇼크가 있었고 새해에는 반도체 가격과 수요가 떨어진다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연초에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도 불안하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경기가 나빠지자 투자를 줄이고 있다. 설비투자는 작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연속 감소(전월 대비)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9월부터 1998년 8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한 이래 가장 긴 기간 마이너스였다. 작년 9, 10월 두 달간 반짝 호전됐지만 11월 다시 감소했다.

장기실업자 15만 명

고용 지표 역시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실업자와 장기실업자(구직기간 6개월 이상)는 각각 107만3000명, 15만4000명으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전체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4.4%로 이 역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은 전년 대비 9만7000명으로 2009년(8만7000명 감소) 이후 9년 만에 최악이었다. 지난해 연간 고용률은 60.7%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는데, 연간 고용률이 떨어진 것은 2009년(-0.1%포인트) 이후 처음이다. 작년 실업률은 3.8%로 2001년 4.0%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았다.

취약계층의 빚 부담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도·소매업 대출 잔액은 141조737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7% 증가했다.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었던 2009년 1분기(12.8%) 이후 가장 높았다. 영업이 악화하는 가운데 빚을 내서 겨우 버티고 있다는 의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등 외부적으론 호재가 많았지만 정부가 기업의 세금과 인건비 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쓰며 투자와 고용이 줄었다”며 “반도체 착시가 걷히고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 올해 경제 지표는 작년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태훈/서민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