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의 치료대상 질환(적응증)이 늘어나면 판매가 증가할 것을 예상해 미리 약값을 깎는다. 이후 사용량이 실제로 늘면 사용량과 약가 연동제에 따라 다시 약값을 깎고 있다. 이는 의약품 개발 의욕을 꺾는 이중규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약값을 미리 깎는 사전약가인하제를 개선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 약값을 정할 때 국산 신약 개발 풍토를 반영해달라는 의미다. 의약품 적응증을 한 개 추가하기 위해서는 2~3년 동안 30억원 정도를 투입해야 한다. 국내 제약사는 신약 개발 초기부터 연구개발(R&D) 비용을 많이 투입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나의 질환에 듣는 약을 개발한 뒤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추가로 해 적응증을 늘리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국내 건강보험 약가 제도에 따라 이미 약값이 정해진 의약품 적응증을 늘릴 때는 약이 이전보다 많이 팔릴 것을 예상해 약값을 깎는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예상한 것보다 약이 덜 팔려도 한 번 깎은 약값을 되돌리지 않는다. 복지부는 약 판매량이 늘면 늘어난 판매량만큼 약값을 깎는 사용량-약가 연동제도 운영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한 번 깎은 약값을 더 깎으면서 약값이 지나치게 많이 내려간다고 지적한다. 2009년 소화성 궤양 치료제로 개발된 일양약품의 놀텍은 2013년 역류성 식도염 적응증이 추가되면서 약값이 4.2% 내려갔다. 이후 사용량이 늘자 약값은 8.3% 더 내려갔다. 소화성 궤양과 역류성 식도염은 환자군이 비슷하다. 약 판매량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적응증이 추가됐다는 이유로 약값이 10% 넘게 깎인 셈이다. 일본 대만 등도 한국과 비슷한 약가 인하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모두 사후 약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우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사용량-약가 연동제로 건강보험 재정의 안전장치는 충분히 마련돼 있기 때문에 사전약가인하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통상 압박도 국산 신약 육성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복지부는 국산 신약 개발을 육성하기 위해 2016년 7월 혁신신약 우대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막혀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후발주자인 국내 제약사의 성장 DNA를 키우기 위해 약가는 물론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