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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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심 크기를 줄인 두루마리 화장지, 염료를 넣지 않아 안이 보이는 플라스틱 수납 케이스, 상품성이 떨어지는 표고버섯 모음…. 이 같은 7000여 종의 무인양품(無印良品·Muji) 제품이 가진 공통점은 뭘까.

무인양품 직원들은 매주 점검 회의에서 ‘면봉이 조금 더 짧아도, 테이프 폭이 좁아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엉뚱한 의견을 나눈다.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은 “지금보다 20% 적은 재료로 제 역할을 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간소화 혹은 생략을 통해 매력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단순하고 조화롭게 사는 커뮤니티를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물처럼 무색·무취하지만…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유그룹의 자체 브랜드(PB)로 시작했다. 가나이 회장은 1976년 19세에 세이유그룹에 입사해 무인양품이 PB로 커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1989년 무인양품이 세이유그룹에서 분사한 뒤 그는 무인양품 모회사인 양품계획으로 자리를 옮겼고 상품개발본부에서 제품 생산과 판매를 총괄했다. 2008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무인양품은 의류와 생활용품, 문구류, 식품뿐만 아니라 단독주택, 호텔까지 공급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말하는 ‘무지(Muji)스럽다’는 표현과 관련해 가나이 회장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고에서 “무인양품의 제품들이 마치 물처럼 누구에게나 두루두루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비유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물처럼 무색·무취하게, 제품의 개성을 줄이는 대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적당한 만족감을 주는 디자인을 창출하는 게 무인양품의 목표다. 디자이너 채용 공고에 ‘디자인을 하지 않는 디자이너 모집’이라는 구절을 넣을 정도다. ‘무인양품’이라는 회사 이름도 ‘브랜드(印)가 없는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무지’라는 이름은 무인양품의 일본어 발음 ‘무지루시료힌’의 첫머리를 땄다. 1991년 런던 매장을 시작으로 유럽에 진출하면서 무지란 이름을 무인양품과 함께 쓰고 있다. 지난 회계연도(2017년 3월~2018년 2월) 매출은 3795억5100만엔(약 3조8000억원)에 달했다.

자율주행버스 ‘가차’
자율주행버스 ‘가차’
서두르지 않는 매장 확대 전략

무인양품엔 현지화 전략도 따로 없다. 가나이 회장은 “현재 7000여 개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지만 어느 특정한 국가나 지역에 따라 현지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구매와 사용에 이르는 모든 경험이 세계 어디에서도 동일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오히려 같은 비전과 실행을 고수한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만든 전략계획에도 ‘간지 이이 구라시(感じ 良いくらし)’라고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가나이 회장은 “외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커뮤니티의 일부분으로서 심플하게, 양심적으로, 조화롭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철학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부터 가장 외떨어진 지역에까지 전파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인양품은 일본에서 과거 유명 쇼핑지였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유령도시가 돼버린 도심 외곽 지역에 카페테리아,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외 사업을 확장하면서 품질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고 매장을 감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인양품은 매장 디자인과 배치, 제품의 표준화를 책임지는 부서를 설치했다. 또 일본 도쿄 본사에서 설명회를 열고 현지에서 채용된 매장 매니저들을 불러 동일한 교육을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확대에서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가나이 회장과 마쓰자키 사토루 사장, 그리고 유럽·북미, 동아시아, 서남아시아·오세아니아 등 3개 지역별 디렉터가 참여하는 매장계획위원회에서 새로운 개점 후보지를 제안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따르고 있다. 어떤 국가나 지역에 있는 기존 매장이 수익을 내기 시작해야 추가로 매장을 열 수 있다. 현재 무지카페를 포함한 일본 내 매장은 454개다. 여기에 해외에 474개 매장을 두고 있어 세계 매장은 928개다.

‘물고기 떼’처럼 움직이는 조직

무인양품의 기본철학은 지나친 장식은 없애고 사용 편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철학을 반영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선전, 6월엔 베이징에 무지호텔이 문을 열었다. 무인양품은 디자인 감수료와 로열티만 받는 사업모델이다.

올해 말엔 무인양품의 취향을 담은 지하철역사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사카 히라가타역사 디자인을 무인양품이 맡았다. 모기업인 양품계획은 최근 핀란드 자율주행기술 개발업체 센서플4가 제작하는 자율주행버스 ‘가차’의 디자인을 공개하기도 했다.

가나이 회장은 무인양품의 기업문화를 ‘물고기떼’에 비유했다. 그는 2016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한 강연에서 “무인양품은 물고기 같은 조직”이라며 “작은 물고기 여러 마리가 모여 한 마리의 큰 물고기 형상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누군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라고 명령하고 이끌지 않아도 작은 물고기 하나하나가 방향을 찾아가는 조직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하나의 철학을 공유하기 때문에 가능한 문화다.

가나이 회장은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따로따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사방의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늘 인식하고 있다”며 “자신의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인식하고 소통을 잘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