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딴짓하는 의사들
‘딴짓하는 의사들’이라는 모임이 있다. 제약사, 언론, 기업 등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이 모여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사실 필자도 35년 동안 임상 진료를 한 내과 의사로서 올해부터 바이오기업에서 일하는 기업인으로 변신했으니 딴짓하는 의사가 된 셈이다.

그런데 ‘딴짓’한다는 말 속에는 의사는 진료만 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 관념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30여 년 동안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의대로 진학했다. 이는 국내 임상의학의 수준을 높이는 데는 기여했지만 다양한 학문과 산업 분야를 이끌어 갈 전문 인력의 균형을 훼손했다. 의학 공부를 한 인재들이 임상의학 외에 바이오산업이나 연관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면 국가 발전의 새 동력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세계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바이오기업과 제약사, 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계속 늘고 있다.

미국 의사창업자협회는 의사가 훌륭한 창업자가 될 수 있는 10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우선 환자를 진단해 치료하는 과정이 시장의 요구를 파악해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사업 과정과 비슷하다. 창업가 정신은 기본적으로 ‘연구와 실험’에 기반한다는 점도 의료 과정과 같다. 의사들은 치료할 때 확실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도록 훈련받는 점도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또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관찰과 질문을 연계하도록 훈련받으며 위험과 이득의 분석에도 능숙하다. 무엇보다 진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충족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기술의 기본적인 개발법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들은 효과 없는 일을 끝낼 줄 아는 용기가 있다. 이는 사업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근본적으로 의료와 바이오산업은 건강을 관리해 질병을 예방하고, 진단·치료해 수명을 연장한다는 공동 목표가 있다. 딴짓하는 의사들이 바이오산업 현장에 꼭 필요한 이유다.

의사가 직접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진료와 연구기술을 사업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은 “병원의 기술을 사업화함으로써 전 세계 환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사업화로 발생하는 수익은 병원의 진료, 연구, 교육 발전에 투자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술 사업화를 한다. 이를 통해 지난 30년간 3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동안 환자 수에만 의존해 운영하던 국내 병원들도 최근 기술 사업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딴짓하는 의사가 더 많아질수록 궁극적으로 의료와 바이오산업이 같이 발전하고, 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