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발산업은 일본 생산설비 도입과 값싼 인력 덕분에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부산 신발산업은 일본 생산설비 도입과 값싼 인력 덕분에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부산은 신발의 도시다. 1980년대 초반까지 부산 지역 신발산업의 고용인구는 5만 명을 웃돌았다. 국제상사 등 고용인원이 1만 명이 넘는 신발회사도 4곳에 달했다. 1980년대 말까지 한국 수출 품목 중 상위 5위 이내를 꾸준히 유지했다. 지금도 전국 신발 제조업체(2016년 기준) 493곳 중 절반에 가까운 230곳은 부산에 있다.

왜 부산이었을까. 1950년 6·25전쟁이 부산을 국내 신발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 임시수도가 된 부산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운영하던 고무신 공장들이 건재했다. 전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고무신 대신 군화 등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피란민은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1970년대는 신발 주력제품이 고무신, 군화가 아니라 운동화로 바뀌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의 운동화 제조 기술과 생산설비가 유입됐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으로 일본 회사들이 진출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까지가 부산 신발산업의 전성기였다. 출퇴근 시간에 주요 신발공장 앞은 직원들의 행렬로 인산인해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신발산업에 종사 중인 한 기업인은 “젊은 직원이 많아 금은방에서 결혼반지나 돌 반지가 잘 팔렸다”며 “신발공장이 모여 있던 부산진구에는 금은방이 줄지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