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양적공급의 시기는 지났다"
정치인의 인터뷰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정치 지형이나 민심이 예측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빗대 하는 말이다. 정치뿐 아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경제·금융 상황과 정치 상황, 대중의 심리까지 맞물려 돌아가는 부동산 시장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실수요자 보호 및 투기수요 억제를 위한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예측과는 다르게 수도권 지역의 주택 가격이 폭등한 걸 보면 ‘부동산은 생물’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난다.

실제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 비교적 주거선호도가 높은 곳은 1년 새 70~80%가량 주택 가격이 폭등했다.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뿐만 아니라 도심 접근성이 좋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주로 중산층이 진입할 수 있는 서울 도심권 내 7억~8억원대 아파트 가격이 대부분 12억~14억원대로 수직상승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상승기에 참여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부동산 우울증’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의도와는 다르게 폭등을 불러온 원인은 무엇일까. 잘못된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전방위적으로 다주택자를 압박하기 위해 양도소득세와 보유세 등 세제를 강화하고 대출규제를 통해 투기수요를 차단하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은 양도소득세 강화를 통해 다주택자를 압박하려 했지만 오히려 부동산 시장에서 매물 실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효과다. 또한 노무현 정부와는 다르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해 양도세를 절세할 수 있다 보니 양도세 중과가 오히려 임대사업자 등록 증가로 이어지면서 의무 임대기간 동안 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게 됐다. 매물 감소로 거래량은 거의 없지만 가격은 상승하는 비정상적인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올해 7월에 나온 보유세 개편안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보였다. 시장 참여자들이 예상했던 것만큼 보유세에 대한 부담이 높지 않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결국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저가 매물들이 소진되면서 ‘9·13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주택 가격이 폭등하는 원인이 됐다.

신규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대출규제는 결론적으로 주거선호도가 높은 지역에 실수요자가 진입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같은 규제지역의 경우 담보인정비율(LTV)이 낮아지면서 실수요자들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것이다. 여기에 9억원 이상 아파트의 경우 중도금 대출이 막혀 강남권 또는 준강남권 시장은 현금 여력이 충분한 그들만의 잔치로 변해버렸다. 높아진 주택 가격에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실수요자들은 LTV 비율이 비교적 높은 비규제지역으로 ‘하향 천이’하면서 풍선효과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도 이번 주택 가격 상승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기존 노후화된 주거지역에 대해 전면 철거를 통한 신규 아파트 공급에서 뉴타운 출구전략이라는 보존 중심의 재생사업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전면 철거 방식의 경우 투자자 진입으로 원주민들이 이탈하게 되고 자본이득이 투자자에게 집중되는 데다 비교적 임차료가 저렴하던 서민 주택이 대거 멸실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대신 보존 중심의 재생사업을 펼쳐나가면서 결과론적으로는 신규 아파트 공급이 더욱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의 신규 주택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이 따르지 못하면서 집값 폭등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주택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부동산도 생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 발표되더라도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 폭등의 주원인이 공급 부족에 있는 만큼 주택 시장 안정화의 답은 공급에 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는 동안 정부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주택 공급량은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공급대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앞으로 2기 신도시 및 수도권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 양만 따져보면 정부의 주장도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장 참여자들의 수요다. 주택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고 싶은 지역에 충분한 주택이 공급돼야 한다. 살 집이 아닌, 살 만한 집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의 의도대로 주택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발표한 3기 신도시 대책이 가장 중요한 열쇠다. 1기 신도시의 접근성 및 2기 신도시의 자족기능을 갖춘, 즉 1기 신도시와 2기 신도시의 장점을 갖춘 3기 신도시에 양질의 주택이 공급돼야 이번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제 양적 공급의 시기는 지났다. 양질의 주택, 살고 싶은 지역에 살 만한 집이 많아지고 꾸준하게 공급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정책이 중요하다.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갈증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정책이 곧 주택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