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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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동산 시장은 일본형 장기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 부동산 시장 폭락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버블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이런 현상을 한국에 적용 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일본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부동산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의 유례없는 상승률과 기업들이 주도한 버블이었다는 점, 금리인하 타이밍과 주택공급 정책에 대한 일본정책 당국의 잘못된 판단 등이 20년 장기불황을 초래했다는 게 홍 팀장의 분석이다.
◆80년 간 부동산가격 30배 폭등

1990년을 전후한 일본의 부동산 시장 버블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 동경 도심 내 자리했던 일본왕의 거처 황거(皇居) 일대 부동산 가치평가액이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홍 팀장은 “우리나라에 빗대면 황거 일대는 광화문 정도로 볼 수 있다”며 “한바퀴를 걸어서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 반경 5km 내외의 작은 땅이 42만㎢의 캘리포니아보다 비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버블이 정점을 찍었던 1990년 당시 일본의 GDP(국내총생산량) 대비 토지가격 비율은 5배를 초과했다. 이 수치는 1955년 1.3배에서 1987년 4.7배까지 치솟아 1990년 최고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의 GDP 대비 토지가격 비율은 2.2~2.3배 수준을 유지했다.
세계 시장과 비교해도 일본은 독보적이다. 1913년부터 2013년까지 전세계 실질부동산가격(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부동산가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는 100년 간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9배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본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1990년 가격이 1913년의 30배를 넘어섰다. 홍 팀장은 “절해고도에 있는 갈라파코스섬에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생물들이 많이 산다”며 “일본이 부동산 시장에서는 갈라파고스와 같은 존재여서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이 버블의 주범”

일본의 당시 부동산 폭등장은 1985년 플라자합의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재무장관이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하면서 ‘엔고’ 불황이 시작됐다. 당시 달러당 240~250엔 수준이었던 환율은 100엔까지 떨어졌다. 수출 경기가 부진에 시달리면서 일본중앙은행은 1985년 5% 수준이었던 금리를 2.5%까지 인하했다. 금리를 낮추면 엔화 매수 심리가 약해져 환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금리가 인하되자 기업들이 대출을 받아 재테크에 나서기 시작했다. 1989년 금융권을 제외한 일반 기업체의 부동산 매수 규모가 10조엔을 넘어섰다. 홍 팀장은 “내수경기를 부양해 부진을 완화한다는 취지였으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기업이 버블의 주범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 소득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을보면 동경의 핵심 지역의 경우 1984년 6.9배에서 1987년 11배, 1988년에는 15배까지 올랐다. 연소득의 15배 수준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일본 당국 오판이 장기불황 견인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1990년대 초반 일본이 정권 교체와 일본은행 독립 등 국내 이슈로 빠른 조치가 어려웠던 점이 장기불황을 이끌었다. 홍 팀장은 “일본 중앙은행은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일본 경제성장률이 무너지고나서야 금리인하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일본정책당국의 잘못된 판단도 부동산 폭락으로 인한 불황을 장기화 한 원인이 됐다. 일본주택공급 추이를 보면 버블이 정점이었던 1990년 160만호를 공급한데 이어 1990년 중반 내내 연간 140만~160만호를 지었다. 이 시기에는 임대아파트, 임대연립주택 주택공급이 특히 늘었다. 홍 팀장은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정책을 펼친 것이 결국 일본 부동산 시장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