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당국 오판이 장기불황 견인
1990년을 전후한 일본의 부동산 시장 버블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 동경 도심 내 자리했던 일본왕의 거처 황거(皇居) 일대 부동산 가치평가액이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홍 팀장은 “우리나라에 빗대면 황거 일대는 광화문 정도로 볼 수 있다”며 “한바퀴를 걸어서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 반경 5km 내외의 작은 땅이 42만㎢의 캘리포니아보다 비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버블이 정점을 찍었던 1990년 당시 일본의 GDP(국내총생산량) 대비 토지가격 비율은 5배를 초과했다. 이 수치는 1955년 1.3배에서 1987년 4.7배까지 치솟아 1990년 최고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의 GDP 대비 토지가격 비율은 2.2~2.3배 수준을 유지했다. 세계 시장과 비교해도 일본은 독보적이다. 1913년부터 2013년까지 전세계 실질부동산가격(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부동산가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는 100년 간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9배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본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1990년 가격이 1913년의 30배를 넘어섰다. 홍 팀장은 “절해고도에 있는 갈라파코스섬에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생물들이 많이 산다”며 “일본이 부동산 시장에서는 갈라파고스와 같은 존재여서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이 버블의 주범”
일본의 당시 부동산 폭등장은 1985년 플라자합의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재무장관이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하면서 ‘엔고’ 불황이 시작됐다. 당시 달러당 240~250엔 수준이었던 환율은 100엔까지 떨어졌다. 수출 경기가 부진에 시달리면서 일본중앙은행은 1985년 5% 수준이었던 금리를 2.5%까지 인하했다. 금리를 낮추면 엔화 매수 심리가 약해져 환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금리가 인하되자 기업들이 대출을 받아 재테크에 나서기 시작했다. 1989년 금융권을 제외한 일반 기업체의 부동산 매수 규모가 10조엔을 넘어섰다. 홍 팀장은 “내수경기를 부양해 부진을 완화한다는 취지였으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기업이 버블의 주범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 소득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을보면 동경의 핵심 지역의 경우 1984년 6.9배에서 1987년 11배, 1988년에는 15배까지 올랐다. 연소득의 15배 수준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일본 당국 오판이 장기불황 견인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1990년대 초반 일본이 정권 교체와 일본은행 독립 등 국내 이슈로 빠른 조치가 어려웠던 점이 장기불황을 이끌었다. 홍 팀장은 “일본 중앙은행은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일본 경제성장률이 무너지고나서야 금리인하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일본정책당국의 잘못된 판단도 부동산 폭락으로 인한 불황을 장기화 한 원인이 됐다. 일본주택공급 추이를 보면 버블이 정점이었던 1990년 160만호를 공급한데 이어 1990년 중반 내내 연간 140만~160만호를 지었다. 이 시기에는 임대아파트, 임대연립주택 주택공급이 특히 늘었다. 홍 팀장은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정책을 펼친 것이 결국 일본 부동산 시장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