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트럼프식 고립주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백광엽 논설위원
![[천자 칼럼] 트럼프식 고립주의](https://img.hankyung.com/photo/201809/AA.17864203.1.jpg)
수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대외적으로는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미국의 오랜 외교전략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96년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우리 운명을 유럽 어느 지역과 얽히게 해선 안 된다”는 고별사를 한 이래의 전통이다. 1823년에는 ‘먼로 독트린’이 발표됐다. “아메리카는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 유럽도 아메리카에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단재 신채호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신성한 문라(文羅)주의’라고 칭한 바로 그 ‘먼로주의’다.
ADVERTISEMENT
윌슨이 그렇게 봉합에 나섰지만 이후 미국의 고립주의는 수시로 궤도를 이탈했다. 6·25전쟁, 베트남전 참전으로 유명무실화된 고립주의로 다시 복귀한 건 베트남전 포화가 한창이었을 때다. 미국은 1969년 괌에서 ‘닉슨 독트린’을 내놓으며 고립주의로 회귀했다.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사람들이 하라”며 발을 뺀 것이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모호함이 더해진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전기를 맞았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유엔에서 “국제기구가 시급한 안보문제에 무능하다면 미국이 일부 단독으로 해결하겠다”고 연설하고 걸프전을 감행했다. 그렇게 ‘제국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ADVERTISEMENT
트럼프의 파격은 국제경제 질서에도 쓰나미를 불렀다. 중국은 물론이고 독일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전통적인 우방들과도 무역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돌아보면 미국의 고립주의는 ‘변형된 개입주의’ 성격이 짙다. 안보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자국 이익을 관철한다. 트럼프의 언어는 늘 이중적이다. 자유무역 거부가 아니라 ‘불공정한 무역 개정 요구’라는 식이다. 트럼프의 종횡무진이 불안한 것은 북핵 게임이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까봐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핵을 용인하는 ‘트럼프 독트린’이 곧 나올 것”이라고 했다. 북핵만큼은 고립이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연대로 풀어나가길 기도해본다.
kecorep@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