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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수준의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으로 평가받는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발표된 뒤 부동산시장이 숨을 고르고 있다. 한가위를 맞아 한데 모인 가족들이 이야기 꽃을 피울 때 대화 주제로 9·13 대책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추석 이후 부동산시장에 대해 대출 규제와 세제 강화로 매물이 줄어 당분간 거래가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또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세를 유지하려면 확실한 공급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물 잠김 심화… 집값 단기적 관망세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 영향으로 단기적 관망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서울 주택의 주요 구매층은 1~2주택자인데, 이번 대책으로 이들에게 적용되는 규제가 여럿 생겼다”며 “입지가 더 좋거나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던 실수요 1주택자도 추가 대출이 막혀 이사 갈 집을 사기 어려워지고, 이 영향으로 단기적으로 매수세가 약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종합부동산세 부담, 2주택자 이상 신규 대출 금지로 다주택자가 쉽사리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세법 개정을 위해선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는 등 시간이 걸리므로 당분간 주택시장이 눈치 보기 장세에 들어가 거래량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다주택자를 겨냥한 규제가 많고 공시 가격의 실거래가 비중도 확대될 예정이어서 다주택자는 주택을 추가 구입하는 데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봤다.
집 팔기도, 집 사기도 부담… 거래 끊기고 '눈치보기' 심화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서울 등 수도권 핵심 지역에서는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다주택자들이 종부세 등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8년 장기임대주택으로 대거 등록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기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원칙상 정해진 임대 기간에는 집을 팔 수 없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들이 장기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한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연구원은 “종부세 부담이 예상보다 많이 커지지만 양도세가 중과되는 상황에서 매도보다는 증여 등으로 세금 부담을 분산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도 “9·13 대책은 한마디로 집을 팔지도 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집을 팔 때의 세금 부담보다 보유하는 비용이 덜하기 때문에 버티기에 들어가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집 팔기도, 집 사기도 부담… 거래 끊기고 '눈치보기' 심화
◆중장기적 효과는 ‘글쎄’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이 관망하면서 집값이 당분간 주춤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론 집값 안정효과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냈다.

이 연구원은 “세 부담을 감수하고 기존 주택을 팔면서까지 새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면 인기 단지엔 매수세가 더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 상승률이 한풀 꺾이더라도 효과가 지속될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금 중과가 별 영향을 못 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종부세는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하고, 법원 판결 등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 선례도 있어 실제 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단기적 매수 심리엔 압박을 줘도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시장 규제가 강해지면서 풍선 효과와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고액 자산가들은 주요 입지 유망단지는 여전히 팔지 않고 보유할 것”이라며 “늘어난 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해 전·월세 임차시장에서 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시장 유동자금이 많은 만큼 규제가 강화된 주택시장을 피해 상가 또는 꼬마빌딩으로 매수세가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번 정책으로 집값이 오히려 더 뛸 우려가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김 소장은 “서울 여의도·용산 개발 등 대규모 도시개발 계획이 밀리면서 핵심 지역에 공급이 상당히 적다”며 “지금 개발을 결정해도 입주까지 10여 년 걸리는데 계획은 줄이고 거래에 따르는 세금을 늘리니 새 단지와 매물 공급이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공급 대책이 ‘키’

전문가들은 집값 향배가 결국 아파트 수급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21일 신규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포함한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연구원은 “그간 집값이 오른 것은 새 집 선호, 소득 증가, 매물 감소, 멸실 증가로 인한 것”이라며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정책 규제로는 수요를 잡을 수 없다”며 “관건은 좋은 입지에 집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양 소장은 “서울은 주거 수요가 계속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공급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상 다시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며 “추후 입지가 좋은 곳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공급 계획이 나온다면 주택 가격 상승폭이 둔화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수세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 팀장은 “수요자는 장기적으로 공급 대책을 보고 움직일 것”이라며 “단기 관망 이후 주택시장 향배는 결국 주택 공급 대책 내용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주택시장에서 실수요가 크다고 분석했다. 투기적 수요가 아니라 소득이 증가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며 새 집 선호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주택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공급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지금 주택시장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주택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살기에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주택 주요 수요층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 구식 주택과 아파트가 주택 총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부산에선 일부 지역이 가격 조정을 거치는 중인데도 도심 재개발·재건축 분양 단지가 나오면 청약 경쟁률이 5~10 대 1을 쉽게 넘긴다”며 “외지 투자 수요가 들어오지 않아도 실수요가 탄탄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집값을 잡으려면 확실히 공급을 언제까지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일자리와 광역교통망 등을 확보해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며 “일자리 접근성이 좋지 않은 수도권 외곽에 대단지를 짓는 등 왜곡된 공급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