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포장'을 바꾼다고 경제 나아지겠나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대신 포용적 성장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내용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포용적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으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한 의미 때문인지 긍정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실제 포용적 성장은 문 대통령이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나낙 카콰니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와 에르네스토 페르니아 필리핀대 교수다. 그들은 2000년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아시안 디벨로프먼트 리뷰’에 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장이란 무엇인가’란 논문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장이라고 했고, 그것이 바로 포용적 성장이라고 했다.

그들은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성 차별, 인종 차별, 종교적 차별과 같은 제도와 정책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직종과 직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없애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초교육, 의료와 가족계획, 그리고 금융 접근성에 대한 지원 등을 제안했다. 그들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것은 한국, 라오스, 태국을 비교 연구해 한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장정책을 취해왔고, 라오스와 태국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며, 한국이 가난한 국가들의 모형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카콰니·페르니아의 논문 이후에 포용적 성장에 관한 보고서들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나왔다. 이 보고서들의 공통적인 내용은 모든 사람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경제성장이 창출해낸 부의 일부를 가져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포용적’이란 용어가 나오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2012년에 베스트셀러가 됐던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저술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 거기에서 그들은 경제성장에 중요한 것이 포용적 제도라고 했다. 그 포용적 제도란 다름 아닌 사유재산 보장, 공정한 사법제도, 상호 간 거래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이런 제도들이 잘 갖춰진 국가가 번영하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실패한다는 것을 세계 각국의 사례와 데이터를 이용해 논증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한국이 나온다. 북한과 비교하며 한국은 북한과는 달리 포용적인 제도를 확립해서 번영을 이뤘고 불평등도 적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놓고 보면 한국은 이미 포용적 성장을 위한 기본적인 제도들이 잘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소득불평등 문제에 수수방관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득불평등의 악화 원인을 찾고 그것을 치유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소득불평등이 악화된 것은 성장이 둔화됐기 때문이다. 성장이 둔화되면 가장 피해보는 사람들이 서민층이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일자리가 줄고 소비가 감소한다. 그러면 임금 외엔 소득이 없는 비숙련 노동자들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임금 이외의 소득이 있거나, 숙련노동자들, 그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더라도 생활과 저축이 가능하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소득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정부가 정말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길 원한다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기업 활동이 왕성해지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 활동을 억제하는 정책을 지속하게 되면 어려운 사람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것은 ‘포용적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더라도 그 내용물이 바뀌지 않는다면 경제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하루빨리 정책 방향을 전환해 시장을 중시하고 민간부문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