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LG그룹 주요 계열사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에서 오후 5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 퇴근 버스 출발시간도 오후 7시에서 오후 6시 20분으로 조정됐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근무하는 계열사 직원들이 퇴근 버스로 향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LG그룹 주요 계열사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에서 오후 5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 퇴근 버스 출발시간도 오후 7시에서 오후 6시 20분으로 조정됐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근무하는 계열사 직원들이 퇴근 버스로 향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불법인 줄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법을 지키다간 당장 회사가 문을 닫을 판인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화학·발전 플랜트 공사를 하고 있는 A건설사의 김모 사장은 이달부터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고 있느냐’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 사장은 “중동 발주처와 원청업체인 미국, 유럽 건설사들이 공사 기간과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한국만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인정해주겠느냐”며 “범법자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업종 특성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쉽지 않은 해외 건설업계와 정유·화학업계, 조선업계가 불법 근로(근로기준법 위반)에 내몰렸다. 이들 업종은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인건비 증가와 효율성 저하가 주된 이유다. “단속과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계도기간이 끝나면 모조리 범법자가 될 판”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건설工期 맞추려다 범법자될 판… 업종 특성 반영한 제도 보완 절실"
◆공기 맞추려면 법 어겨야

해외 건설 현장엔 ‘비상’이 걸렸다.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 근무시간에 맞추려면 발주처와 약속한 공기(工期)를 못 지키고, 인력을 늘리면 수익성이 줄고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원청 건설사들에 한국만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우디에서 스페인 건설사의 하청을 받아 플랜트 공사를 하고 있는 B사의 최모 사장은 “원청업체가 주 52시간은 너희 나라 문제니까 인력을 추가 투입해 공사를 끝내라고 했다”며 “인건비가 30% 이상 늘어나게 됐다”고 털어놨다.

중동은 한국인 근로자 한 명을 증원하려면 월급여(평균 1000만원·보험료 포함)와 현지생활비(500만원) 등을 합쳐 총 150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든다. 100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쓰는 현장에서 주 52시간을 지키려면 30명 이상을 충원해야 한다. 한 달 추가 인건비로만 4억5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도 중국 업체들보다 공사비가 20~30%가량 비싼 편이다. 인건비가 더 오르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게 해외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탄력근로제도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해 장기적으로는 공기 지연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반기 정기보수를 앞둔 정유·화학업체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집중근무로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정기보수 기간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기 힘들어서다. 탄력근로제도 해법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탄력근로제로 주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지만 정기보수가 한창일 때는 주 80~90시간까지 일해야 한다. 정유·화학업계는 정기보수를 ‘특별 연장 근로’ 대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다음달 정기보수를 하는 C정유사는 근무 방식을 2조2교대에서 3조3교대로 바꾸기로 했다. 같은 규모의 인력을 2조에서 3조로 나누다 보니 1개조에 투입되는 인원이 줄었다. 이 회사 정비 담당 인원은 “2조2교대를 3조3교대로 운영하면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전문 인력을 당장 충원할 수도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탄력근로제 기간 1년으로 늘려야”

건조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에 앞서 계약서에 따른 성능과 기능을 검증하는 조선업계의 시운전 분야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기 어려운 업종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주로 수주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LNG 상·하역 시험을 거쳐야 해 100여 명의 인력이 바다 위에서 15일가량을 보낸다. 근로자 교대 자체가 쉽지 않고, 승선 근로자를 늘리면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가 커질 우려도 높다. 최소 4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전문인력만 시운전에 투입할 수 있어 추가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재계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보완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3개월(노사 합의 시)에서 1년으로 늘리고 규제를 받지 않는 특례업종을 확대하자는 게 골자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보형/박상익/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