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과 함께 매물로 나온 기업이 있어 급하게 경남 창원에 왔습니다. 내일은 부산에 갑니다. 분위기가 심상찮아요.”

한 회계법인 구조조정·법정관리 전문 회계사는 “자동차, 철강, 조선 분야 대기업에 의존해온 협력업체가 줄줄이 무너질 조짐”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기간산업의 경영 위기가 협력업체 자금난으로 번지면서 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 현장 곳곳에 ‘불황 도미노’

올해 6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도산 신청은 총 836건으로 사상 최다를 나타냈다. 2006년 기존의 파산법·화의법·회사정리법을 한데 묶은 ‘통합도산법’ 출범 이후 최대 규모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외환위기로 기업이 도미노처럼 쓰러진 1998년(연간 1343개) 기록보다 많다. 당시보다 사업체 수가 늘어난 점을 감안해도 불황의 골이 버금가게 깊다는 의미다.

법정관리는 빚이 많아 정상경영이 어려운 회사가 채무를 덜고 경영을 정상화하거나 새 주인을 찾기 위해, 법인파산은 사업 지속이 불가능한 업체가 회사문을 닫기 위해 법원에 요청하는 절차다. 올 들어 국내 2위 폴리실리콘업체인 한국실리콘, 한때 세계 10위 조선소였던 성동조선해양 등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법원 문을 두드렸다.

전문가들은 올해 기업 도산 신청이 늘어난 이유로 ‘불황의 도미노’를 꼽는다. 소위 ‘차(車·자동차)·철(鐵·철강)·조(造·조선)’로 불리는 업종 대기업이 흔들리면서 매출 대부분을 이들 대기업에 의존하는 협력업체까지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기아자동차 1차 협력사인 도금업체 금문산업과 한국GM의 1차 협력업체로 엔진부품을 생산하는 이원솔루텍이 법정관리를 밟고 있다. 포스코가 최대주주로 해양플랜트에 쓰이는 강관을 생산하는 스틸플라워와 크레인 제조업체 디엠씨가 올해 5, 6월 연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13대 수출 주력업종의 한계기업 수는 464개로 전년 대비 65개(16.29%) 늘었다. 한계기업은 2015년 370개에서 2016년 399개로 29개(7.84%)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 증가폭이 두 배로 확대됐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도산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내수시장 침체로 소규모 사업장이 부도사태에 내몰린 탓도 크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한국 중소기업은 10인 미만의 영세업체가 많은데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부도 위험에 시달리는 기업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도산 신청은 3개월~1년 시차를 두고 실업자 증가로 이어진다. 기업이 본격적인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인원 감축, 부지 매각 등 구조조정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실업자 수가 6개월 연속 100만 명대를 기록한 가운데 하반기 실업률 지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한계기업 위기 현실화 가능성”

올 하반기 전망이 어둡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주력 수출산업 위기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까지 겹쳐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이 0.5%포인트로 확대됐다. 한국은행의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계기업의 상환 부담이 커져 대규모 도산 행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내놓은 ‘2018년 3월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인 한계기업은 2016년 말 3126곳으로 전체 외부감사기업의 14%에 달했다. 이들 한계기업이 금융회사에 진 빚은 122조9000억원에 이른다.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현 정부의 노동정책도 ‘뇌관’으로 꼽힌다. 정부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한 8350원으로 결정했다. 한국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5월 기준 73.9%로 7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 인력·설비도 100% 활용하지 못해 재고가 쌓이는 상황에서 인건비 상승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교역 감소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라며 “수출이 꺾이고 금리 인상으로 한계기업 위기가 현실화하면 하반기에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