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글로벌 대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독점적 지위의 남용을 이유로 구글에 역대 최대 규모인 43억4000만유로(약 50억6000만달러·약 5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다. 글로벌 기업들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EU 집행위의 규제 칼날을 피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저승사자' EU집행委
19일 CNN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2004년부터 시장지배력 남용 등을 이유로 10여 개 글로벌 기업에 200억달러가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선도기업들이 EU의 주요 표적이 됐다.

MS는 2004년 윈도 사용자에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인 윈도미디어 플레이어를 끼워 넣었다가 EU에 5억7800만달러의 과징금을 내야 했다. MS는 2005년엔 윈도를 팔 때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포함시킨 것도 경쟁 제한 행위로 간주돼 12억달러의 벌금을 냈다.

인텔은 2009년 델 등 컴퓨터 제조업체에 과도하게 할인된 가격으로 반도체를 공급해 12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경쟁사인 AMD의 시장 접근을 막았다는 이유다. EU는 가격 담합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EU 집행위는 2012년 필립스와 LG전자, 일본의 파나소닉 등이 TV 브라운관(CPT) 가격을 담합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6년에는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과도한 세금 감면 특혜를 받았다며 아일랜드에 애플이 내지 않은 세금 17조원을 징수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 명령은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에 본부를 두고 정작 사업 수익이 많은 국가에서 세금을 회피해온 IT 기업 행태에 대한 거센 비판을 불렀다. 지난해 9월엔 룩셈부르크 정부에 미국 아마존에 대한 세금 감면이 과다하다며 2억9300만달러를 징수할 것을 요구했다. 아마존은 유럽본부를 룩셈부르크에 두고 있다.

EU 경쟁당국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기업에 더 강한 규제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7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왓츠앱을 인수할 때 EU에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는 조사에 따라 1억2200만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구글도 지난해 6월 검색 결과에 특정 기업 광고를 띄우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쇼핑 사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27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EU는 이번에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과 별개로 애드센스 광고서비스와 안드로이드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등의 문제로 구글을 상대로 불공정거래 행위 2건을 더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콜라스 페티트 미국 리지대 교수는 “유럽에서 지배적 기업이 되면 (경쟁당국으로부터) 보다 정밀한 조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