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 여파는 부품회사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 리한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경DB
한국 자동차산업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 여파는 부품회사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 리한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경DB
한국 자동차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부품업체들이 고사(枯死)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올 들어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까지 맞물리며 1년 넘게 고전해온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장 가동률 하락과 자금난 등으로 주요 자동차 부품회사의 절반가량이 올 들어 적자로 돌아섰다. 올 하반기 부품업계에 ‘구조조정 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국내 제조업 일자리의 12%, 수출금액의 13%가량(2016년 기준)을 차지하는 한국 자동차 및 부품산업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車 부품사 적자전환 속출

中 사드 보복·한국GM 사태 후유증에… 車 부품사 절반이 '적자 늪'
한국경제신문이 12일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소속 260개 부품사 중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50개사의 올 1분기(1~3월) 실적을 분석한 결과 23곳이 직전 분기 대비 적자전환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부품사 절반가량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손실을 본 것이다. 경창산업, 서진오토모티브, 세종공업, 아진산업, 에코플라스틱, 평화산업, 현대위아, 화신 등 알짜 부품사 상당수가 ‘적자의 늪’에 빠졌다. 업계에선 올 2분기에 이어 하반기 실적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부품사 최고경영자(CEO)는 “조합에 소속된 부품사는 대부분 국내 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사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며 “나머지 중소 1차 협력사와 2·3차 영세 협력업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사들이 경영난에 빠진 주된 이유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판매 실적 악화에 있다. 주요 완성차 업체가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다 내수시장에선 수입차 공세에 밀리면서 위기가 부품업계로 옮겨갔다는 분석이다. 여기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과 올 들어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등이 이어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中 사드 보복·한국GM 사태 후유증에… 車 부품사 절반이 '적자 늪'
중국에 진출한 국내 부품사 100여 곳은 지난해 사드 보복 여파로 1년 가까이 경영난을 겪었다. 공장 가동률이 50% 밑으로 떨어지고 매출이 30~50%가량씩 줄었다. 상당수 업체는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자동차의 요구로 납품 단가마저 낮추면서 수익성까지 나빠졌다. 중국에 진출한 한 부품사의 임원은 “올 들어 사드 보복이 해소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공장 가동률이 여전히 70% 정도에 불과하다”며 “당분간 자금난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자금난을 못 이겨 한계에 부닥친 기업도 적지 않다. 현대차의 1차 협력업체 리한이 지난달 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게 대표적 사례다. 리한은 자동차 흡기 및 연료계 시스템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은 1800억여원에 달했다. 매년 100억원 가까운 순이익을 내다 지난해 적자를 냈다. 자금난에 빠진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결함 시정) 요구까지 받으면서 주저앉게 됐다는 분석이다.
中 사드 보복·한국GM 사태 후유증에… 車 부품사 절반이 '적자 늪'
◆은행권은 ‘돈줄’ 차단

올 하반기가 더 문제라는 시각도 많다. 은행권이 어음 할인이나 신규 대출을 거부하는 등 ‘돈줄’을 죄면서다. 은행들은 자동차 협력업체를 ‘중점관리대상 업체’로 분류해 금융거래 자체를 대폭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부품사에 비상경영계획(컨틴전시 플랜) 제출을 요구한 은행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품업체 재무팀장은 “요즘 주된 임무는 은행을 돌아다니며 돈을 꾸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시효가 지난달로 끝나 워크아웃 신청마저 어렵게 된 점도 위기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워크아웃을 통한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으로선 채권단의 100% 합의가 필요한 자율협약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업계에선 국내 자동차 및 부품산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현대차와 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 수는 851곳이다. 2·3차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8800여 곳에 달한다. 이들이 흔들리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가 직접 고용한 인력만 35만5000명에 이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품사 자금난이 장기화하면 신규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가 어려워지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김순신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