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前으로 되돌려 본 베토벤 해석
지난 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말러가 바라본 베토벤’(사진) 음악회를 위해 무대에 오르자 객석이 순간 웅성거렸다. 구스타프 말러가 대편성으로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는 자리이긴 했지만 무려 101명에 달하는 단원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 더블베이스 주자만 8명에 달했다.

베토벤 초기 교향곡은 2관 편성(목관 파트별로 2대씩 편성)으로 연주자 30~40명만 갖고도 충분히 멋을 낼 수 있는 곡이다. 그런데도 굳이 4관 편성 편곡을 부천필하모닉 창단 30주년 연주곡으로 고른 것은 말러와 부천필하모닉의 오랜 인연 때문이리라 짐작하게 한다. 약 18년 전 국내 오케스트라로는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 부천필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이 적지 않다.

이날 5번 ‘운명’ 교향곡 도입부의 비장미는 두 배로 늘린 관현악 편성이 들려주는 웅장함과 어울려 음악홀 전체를 압도했다. 특히 공연 내내 귀를 자극한 것은 호른이었다. 일반적인 교향곡에서 호른은 2대가 쓰인다. 트럼펫처럼 단순히 리듬을 새기는 배경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베토벤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교향곡 3번에서 호른을 3대로 편성했다. 말러는 여기에 더해 호른을 무려 6대로 늘렸다. 교향곡 3번에서 각각의 호른은 서로 화음을 이루며 현악을 받쳐주는 배경 악기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중추로 올라섰다. 현악 주도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고전주의 교향곡과는 다른, 낭만주의 초입기 베토벤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관악의 울림을 차용한 듯했다. 베토벤이 강조하고 싶었던 서정성은 불가피하게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 고전주의 음악 연주는 당시 연주회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음향에 빠른 템포와 깔끔한 연주가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지휘자 박영민과 부천필의 이날 연주는 말러식 대편성을 선호한 카라얀이나 번스타인이 지휘하던 1990년대 이전 스타일과 닮았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이 같은 해석이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는 고언도 나온다. 그러나 창단 30주년을 맞는 의미, 말러와의 특별한 인연, 연주 경향의 대세에 물음을 던졌다는 점에서 평가해볼 만한 연주회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