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전문위)가 5일 한진그룹에 최근 오너 일가의 비리 의혹에 따른 평판 악화를 해소할 대책을 요구했다.

▶본지 5월31일자 A1, 5면 참조

국민연금 "한진, 경영관리 개선 대책 내놔라"
전문위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진그룹이 경영관리체계 개선 등을 포함한 문제 해결을 위해 더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황인태 중앙대 교수 등 민간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전문위가 특정 기업에 대한 요구 사항을 담은 자료를 배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위는 지난 4월12일 조양호 회장의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촉발한 조 회장 일가 비리 조사가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위는 “오너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기업 평판 악화를 불러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진그룹은 국민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과 예측 가능한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의 2대주주로, 지난 3월 말 현재 지분 11.81%와 12.4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있는 전문위는 기금운용본부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안건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문위 관계자는 “이번 입장 표명은 자본시장법상 경영권 간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전에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이날 별도로 대한항공에 공개 서한을 발송하고 경영진 면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금운용본부는 “경영진에 대한 국가기관의 조사가 시장의 신뢰성 및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주주사로서 명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입장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말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사태와 관련해 대한항공에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3차 회의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밀수, 관세 포탈, 재산 국외도피, 탈세 등과 관련한 보도가 계속 이어져 국민의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며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공적연금을 활용해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기금운용본부에서 기업에 경영 개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개서한을 보낸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지분 1% 이상을 보유하거나 전체 주식 운용액의 0.5% 이상을 차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772곳에 달한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