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단과대 학장들과 대학원장들이 지난 4일 “총장 후보들에게 선심성 공약을 요구하는 학내 이익단체들이 학교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경고성 성명을 발표했다. 오는 10일 총장 선출을 위한 정책평가단 투표를 앞두고 선거가 ‘민원 해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교직원·학생·부설학교 교원 등으로 구성된 정책평가단 투표 결과는 총장 선거에 절대적 영향을 준다. 투표 결과에 따라 후보 다섯 명 중 세 명이 1차 후보로 선출된다. 대학 이사회가 이 중 한 명을 총장 후보로 교육부에 올리지만, 다득표자가 유력한 총장 후보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총장 후보들이 이익단체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대 교직원 노조, 학생회, 특정 학과 교수회 등은 총장 후보들에게 학과 구조조정 철폐 등 자신들의 숙원 사업을 공약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파벌 간 갈등이 고조되고, 상대 후보들에 대한 투서와 비방도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학 혁신 등 서울대의 시급한 거시적 과제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신임 총장도 공약을 지키느라 개혁보다 복지에 신경을 더 써야 할 판이다. “총장 선거 때마다 대학이 피멍 든다”는 개탄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적인 대학 중 교수나 직원들이 총장을 직접 뽑는 곳은 거의 없다. 대학 이사회가 적임자를 선임한다. 성과가 나쁘지 않을 경우 총장을 연임시킨다. 2016년 퇴임한 존 헤네시 전 미국 스탠퍼드대 총장은 16년이나 재임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대학을 발전시켰다. 학내 구성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1975년 이후 연임 사례가 없는 서울대의 사실상 4년제 단임(單任) 총장 시스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대학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하지만 서울대 등 국내 주요 대학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뒷걸음질 치고 있다. 여기에는 대학을 ‘정치판화’하는 총장 선거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서울대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총장 선거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대학이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학생 선발과 대학 운영에 자율권을 돌려주는 ‘특단의 대책’도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