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사건은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 처지에서 느낀 성적 굴욕감을 헤아려 판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성희롱 관련 사건의 심리와 증거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방의 한 대학교수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 결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패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수업 중 질문을 받으면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듯한 자세로 지도하고 피해자 엉덩이를 토닥이는 등 총 14건의 성희롱을 한 혐의를 받아 2015년 4월 해임됐다. 피해자 B씨가 학교에 신고하면서 친구인 피해자 C씨와 D씨를 데리고 가 A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1심은 징계사유를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2심은 다르게 봤다.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처음 문제 제기한 피해자 B씨에게 A교수가 한 성희롱 6건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수업 중 일어났다고 상상하기 어렵고 피해자와 다른 학생들의 익명 수업 평가에서도 관련 언급이 없어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1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A씨 수업을 들었던 점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했다”며 “충분한 심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성희롱 피해 등을 고발하려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2차 피해’가 생길 가능성에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로 그의 진술이 지닌 증명력을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B씨가 A교수를 고소한 형사 사건은 2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피해자 D씨가 고소한 형사 사건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됐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