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삼성의 핵심 계열사들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0대 주요 그룹 계열사 중에선 첫 시도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회사 경영진이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3일 정기 주주총회 직후 이사회를 열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으로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원장, 김종훈 키스위 모바일 회장, 박병국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등 3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는 사외이사 후보의 역량과 독립성 등을 검증해 이사회에 추천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사내이사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과 사외이사 3명 등 총 4명으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올해 권 회장이 삼성전자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권 회장을 대신할 후보를 추가하지 않아 사외이사후보추천위가 사외이사 3명으로만 꾸려졌다.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도 지난달 주총에서 사외이사후보추천위(3명)를 전원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사내이사였던 김신 전 삼성물산 사장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에서 물러난 뒤 김 전 사장을 대신할 다른 사내이사를 뽑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사외이사 추천위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것은 국내 주요 재벌그룹 중에선 첫 사례로 보인다”며 “현행 상법에는 위원회 중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기업들은 대부분 CEO 등 사내이사 한두 명을 후보추천위에 포함한다. 회사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외이사를 뽑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경제계에선 “현대자동차, SK, 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그룹의 이사회 시스템 개편 내용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부가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어서다. 정부의 ‘재벌 개혁’을 총괄하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기업의 사외이사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사외이사가 사외이사를 추천할 경우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기가 쉽지 않으며 사외이사들이 권력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