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담당 김진국 부사장(왼쪽)이 지난 12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실패 사례 경진대회 ‘좋았을 컬’에서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담당 김진국 부사장(왼쪽)이 지난 12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실패 사례 경진대회 ‘좋았을 컬’에서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업계는 신규 공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공정별로 최적의 온도, 시간, 가스 투입량 등을 찾아내 ‘최고의 레시피’를 완성한다. 제품에 따라 적게는 400여 개, 많게는 900여 개 공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게 중요하다. 조합이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만큼 수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연구원들은 레시피를 완성한 뒤에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불량률도 줄이고, 공정 개발 시기도 앞당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실패 경진 대회’를 열자고 제안한 이유다.

실패를 ‘공공 자산’으로

SK하이닉스는 지난 12일 경기 이천시 본사에서 실패 사례 공모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컬’을 열었다. ‘컬’은 문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 ‘컬처(culture)’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재치 있는 행사명도 박 부회장의 아이디어다. 연구개발(R&D)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참신했으나 아깝게 실패한 사례,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실패 원인을 확인하게 된 사례 등을 공모해 시상했다. R&D 과정에서 연구원 개개인이 겪은 실패 경험을 공동의 자산으로 삼는 게 목표다.

SK하이닉스의 파격 실험… R&D 실패해도 아이디어 괜찮으면 포상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이어진 공모전에서 약 250건의 실패 사례가 등록됐다. 반도체 설계·소자·공정, 라인·장비 운영, 환경·안전·보건, 분석·시뮬레이션, 전략·기획 등 연구개발과 관련한 모든 분야가 포함됐다. 이날은 우수 사례 4건을 선발해 박 부회장 등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이 열렸다.

최우수상은 미래기술연구원 R&D공정담당 박지용 책임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10나노급 D램 신규 공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검증 절차를 촘촘하게 설계했다면 불량률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신규 공정 점검 과정은 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에 의존했다. 박 책임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실제 장비에 적용해 직접 돌려보는 과정을 거쳤다면 불량률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시간 대비 효용이 더 컸을 것이라는 뜻이다.

우수 사례로 선정된 또 다른 연구원은 20나노급 D램 개발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적용했던 반도체 소자 구조를 10나노급 D램 개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정성적 목표에 의존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를 공유했다. 당시 정량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면 개발 시기를 좀 더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실패 데이터베이스 구축

이미 실패한 사례를 되짚어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 초미세화로 이미 반도체업계의 효율이 극한까지 올라간 상황에서 불량률을 조금만 낮춰도 ‘공정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작은 실패 사례들을 되짚어보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SK하이닉스는 공모전에 제출된 250건의 실패 사례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할 예정이다.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면 회사 내 데이터사이언스 담당 전문가들이 사례를 분석해 R&D 과정에 직접 적용하기로 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실패를 ‘혁신의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 부회장은 “혁신적인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을 통한 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대신 실패를 분석해 이를 혁신의 기반으로 활용하는 문화를 널리 퍼뜨리자”고 당부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