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조달러(약 39경6048조원) 규모 금융상품 시장을 흔들 새 금리 기준이 다음달 3일 나온다. 2012년 조작 스캔들로 신뢰가 훼손된 런던은행 간 금리(리보·Libor)를 대신해 미국이 환매조건부채권(RP)에 기초한 금리(SOFR: 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를 새로운 기준으로 내놓은 것이다. 영국 리보의 아성을 깨고 미국의 새 금리 기준이 단기 자금거래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지 주목된다.
미국, 리보 대체할 금리기준 내놓는다… 370조달러 자금시장 '지각변동'
◆다음달 3일부터 매일 발표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연방은행은 재무부와 함께 다음달 3일 오전 8시(미 동부시간 기준) SOFR을 처음 공개한다. 이날부터 매일 SOFR을 발표할 예정이다.

SOFR은 뉴욕연방은행이 후원하는 대안기준금리위원회(ARRC)가 리보를 대체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제안한 새 금리 기준이다. 이 위원회는 SOFR 정착을 위한 6단계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5월7일 1개월물과 3개월물 SOFR 선물을 출시한다.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로 유동성이 풍부해져야 SOFR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대체 금리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보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런던 금융시장에서 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되는 이자율로 세계 금융거래의 금리 기준 역할을 해왔다. 학자금 대출, 모기지, 신용카드 대출 등 370조달러에 달하는 금융상품의 이자가 리보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이 대형 은행들의 리보 담합 혐의를 밝혀내면서 신뢰가 훼손됐다. 바클레이즈, 도이치뱅크, UBS,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라보뱅크, 소시에테제네랄, 로이드, JP모간 등 주요 은행은 리보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막대한 벌금을 물었다.

주요 은행 간 설문조사 방식으로 산출되는 리보 금리의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안 마련에 나섰다. 미국의 SOFR 외에 스위스 샤론(RP 금리 연동), 영국 소니아(은행과 건설업계가 이용하는 무담보 익일 대출금리), 일본 토나(시장금리 기준 무담보 익일 대출금리)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리보에 비해 안정적”

리보와 SOFR의 가장 큰 차이는 금리 산출 방식이다. 리보는 주요 은행이 예상한 금리에 의존하지만 SOFR은 증권 중개인과 딜러, 머니마켓펀드(MMF)·자산운용사·보험회사·연기금 등의 펀드매니저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의 실제 거래에 근거해 산출된다. 전날 밤 RP 거래 금리에 기초해 거래 규모를 가중 평균한다.

SOFR은 담보 금리이기 때문에 무담보 리보에 비해 투자자에게 위험이 작다. SOFR의 산출 근거인 RP는 주로 미국 국채를 담보로 산출된다. SOFR은 익일물 확정금리지만, 리보는 5개 통화로 산출되고 만기도 1일물에서 1년물까지 7개로 나뉜다.

금리 산출 근거가 되는 거래 규모도 SOFR이 리보에 비해 훨씬 크다. ARRC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RP의 하루 평균 거래 규모는 7000억~8000억달러에 달한다. 3개월물 리보 거래 규모는 5억달러로 추산된다.

◆영-미 주도권 싸움 벌어지나

업계 전문가들은 SOFR이 당장 리보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리보 종주국인 영국도 미국에 이어 대체 금리를 찾고 있는 만큼 변화는 시작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리보를 대체할 새 벤치마크를 놓고 영국과 미국 간 주도권 싸움도 예상된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2021년 말까지 리보 사용을 중단하기로 하고 새로운 기준금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SOFR이 새 기준으로 자리 잡기 전에 영국이 대체 금리를 공식적으로 내놓는다면 주도권 싸움은 한층 격해질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2020년까지 익일물 무담보 대출금리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경쟁에 가세했다.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리보에 연동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자 보호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마크 보야지안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 채권그룹 선임부사장은 “금융회사들이 신규 발행 대출채권 약정서에 다른 관련 금융회사 동의 없이도 리보에서 다른 대체 금리로 변경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투자자 권리가 침해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