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청약예금, 중대형 청약 가능한 고액 통장 전환 증가
청약저축 '무용론'에 청약예금 전환도…전문가 "득실 따져봐야"


서울에 거주하는 박모(43)씨는 최근 갖고 있던 300만원짜리 청약예금 통장을 1천500만원으로 증액했다.

2년 전 집을 보유하고 있던 집을 팔고 무주택자가 됐지만 무주택 기간이 짧고, 부양가족 수도 적어 청약가점제 점수가 높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27일 박씨는 "서울에서 분양하는 중소형 아파트는 100% 청약가점제로 분양한다니 인기 단지에는 당첨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며 "가점도 중소형보다 낮고 일부는 추첨제로 공급하는 중대형이 유리할 것 같아 증액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청약가점제 시행이 확대되면서 청약통장을 '리모델링'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청약가점이 낮아 당첨 확률이 떨어진 사람들은 추첨제 물량이 있는 중대형 청약을 검토하기도 하고,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청약예금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동안 외면받던 중대형 청약예금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8·2대책으로 작년 9월 20일 이후 공급되는 투기과열지구 내 전용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100%, 청약조정지역 내(투기과열지구 제외) 중소형은 75%가 청약가점제로 공급되면서 상대적으로 가점이 낮은 사람들의 1순위 당첨 확률이 낮아진 때문이다.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에도 가점제가 적용되지만 투기과열지구는 공급물량의 50%, 청약조정지역은 30%만 적용돼 나머지 50, 70%는 가점과 무관한 추첨제로 분양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청약예금 가입자들이 중대형 아파트에 청약이 가능한 금액대로 예치금액을 올리고 있다.

서울의 300만원짜리 청약예금 가입자가 전용 135㎡ 아파트에 청약하려면 입주자 모집공고일 전까지 청약 예치금을 1천만원으로, 더 큰 주택형에 청약하려면 1천500만원으로 늘리면 된다.

직장인 서모(40)씨도 가점제 때문에 중대형 청약을 고민중이다.

서 씨는 "요즘 서울지역 웬만한 아파트 청약가점제 커트라인이 50∼70점 이상으로 높아졌는데 내 가점을 계산해보니 39점밖에 안되더라"며 "일단 중대형으로 통장 증액을 해놓고 중소형으로 할지, 중대형으로 할지 저울질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9월부터 신규 가입이 중단돼 가입자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가운데, 중대형 가입자 수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청약예금 가입자 수는 총 45만7천648명으로 8·2대책이 발표되기 직전인 작년 7월(46만4천772명) 대비 7천124명이 감소했다.

특히 이중 전용 85㎡ 이하 청약 가능한 청약예금 가입자 수는 17만4천464명으로 작년 7월 말 대비 4천97명(2.3%)이 감소한 반면, 모든 중대형 아파트 청약이 가능한 1천500만원짜리 통장 가입자 수는 1월말 기준 3만4천994명으로 8·2대책 전보다 505명이 늘었다.

이 기간에 가입자 수가 증가한 것은 1천만원과 1천500만원짜리 '고액 통장'들 뿐이다.
청약가점제 부담에 '청약통장 리모델링' 수요 늘어
청약저축 통장 가입자들 가운데 청약예금 전환을 검토중인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청약저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급하는 공공주택만 분양받을 수 있는데 정부가 공공주택 분양물량을 대폭 축소한데다 신규 통장 가입도 막혀 가입자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주부 조모(50)씨는 최근 1천500만원 넘게 들어있던 청약저축 통장을 예금으로 전환했다.

조 씨는 "공공아파트는 분양물량이 거의 없고, 있어도 서울 외곽이거나 수도권이어서 (청약저축 통장이) 무용지물이 된 것 같다"며 "민영 아파트 청약이 나을 듯한데 주택청약저축은 신규 가입만 가능하다고 해서 청약예금으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서울·과천지역 민영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통제에 들어가면서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기대되는 일명 '로또 아파트'가 증가한 것도 예금으로의 전환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보인다"며 "실입주보다 '당첨 차익'을 노린 투자 목적의 통장 전환도 적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정부가 수도권 요지에 공공택지와 공공주택 공급을 늘린다는 방침"이라며 "청약저축 장기 가입자는 통장 전환에 앞서 분양가와 당첨 가능성, 분양가 등을 비교해보고 신중히 결정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