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동안 국내 부동산 시장에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로 불리는 개발업체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개발업의 역사는 명성 거평 나산 등이 활약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최근 일제시대 ‘건축왕’ 정세권 선생(1888∼1965)을 국내 최초의 디벨로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이 롤모델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진행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디벨로퍼는 주거시설은 물론 상업시설 레저시설의 토지와 건물 가치를 높이는 부동산 개발 업체다. 업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국내 부동산 시장에 개발사업을 이끈 디벨로퍼가 등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오늘날 한화콘도의 전신인 명성 레저타운이 대표적이다. 명성그룹은 양평 올림픽레저타운 등 전국에 콘도를 지으며 레저시설 분양시장을 열었다. 뒤를 이어 거평, 나산, 한일상공 등이 상가 오피스텔 등 부동산 상품을 개발했다.1990년대에는 신영, 청원건설, 밀리오레 등이 등장하고 2000년대 엠디엠 피데스개발 HMG 네오밸류 화이트코리아 등이 개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개발의 역사를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일제 시대 서울 북촌을 지켜낸 정세권 선생 덕분이다. 1888년 경남 고성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개발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했다.익선동 166 개발을 시작으로 가회동·삼청동 일대 북촌 한옥마을을 만들었다.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 서울 전역에 근대식 한옥 단지를 조성했다.그는 특히 일제가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할 때 북촌에 한옥지구를 개발함으로써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시와 건설·개발업계가 손잡고 정세권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세 단체는 이달 말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토론회, 전시회 등을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문주현 부동산개발협회 회장(엠디엠그룹 회장)은 “정세권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국내 부동산 시장을 지킨 진정한 디벨로퍼”라며 “오늘날 도시재생의 방향을 잡고 디벨로퍼의 역할을 모색하는데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진희선 서울시 도새재생본부장도 “오늘날 서울 도시 공간 구조의 틀을 잡은 분으로 도시재생 관점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모범”이라고 설명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