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실리콘 와디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IT(정보기술) 기업 집산지인 실리콘 와디(Wadi·히브리어로 ‘계곡’). 이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창업 천국’이다. 해마다 1500여 개의 벤처기업이 태어난다. 세계 각국 두뇌들은 최신 기술 트렌드를 찾아 이곳으로 모여든다.

실리콘밸리처럼 화려한 건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대여섯 명씩 팀을 이룬 젊은이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이들은 이스라엘을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키우는 ‘청년 전사’다.

이들의 벤처 기술은 거액에 팔려 나간다. 한국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가 다음카카오에 626억원에 팔린 것과 달리 이스라엘 내비게이션 앱 ‘웨이즈’는 구글에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팔렸다.

실리콘 와디의 성공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7가지를 꼽는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창의적 환경,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창업, 대학·연구소 같은 산학협력 인프라, 공항 등 지리적 접근성, 과감한 벤처 투자, 개인의 능력과 다양성 존중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는 1991년부터 ‘테크놀로지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될성부른 아이디어에 최소 2년간 80만달러까지 지원했다. 인구 800만 명의 작은 내수시장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것도 오히려 도움이 됐다. IT 업체들은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이스라엘 언어인 히브리어뿐 아니라 영어·아랍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히브리대와 텔아비브대 등의 과학기술 인력을 적극 활용하면서 대학을 창업의 산실로 만든 것도 한 요인이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인 ‘후츠파(히브리어로 ‘당돌한’) 정신’까지 더해졌다. 실리콘 와디에서는 아이디어가 다소 약하더라도 토론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으로 발전시킨다. 그런 아이템이 수두룩하다.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도 한몫했다. 대표적인 게 ‘모빌아이의 성공’과 ‘베터 플레이스의 실패’ 사례다. 앞선 자율주행차 기술로 이스라엘 스타트업 최대 규모인 150억달러(약 17조원)에 인텔에 인수된 모빌아이는 최고의 성공 모델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다 파산한 ‘이스라엘판 테슬라’ 베터 플레이스를 통해서는 미래차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찾아냈다.

사이버 안보와 군사 부문에서도 정부와 과학기술계의 긴밀한 협력이 돋보인다. 이스라엘 하이테크 기술이 글로벌 기업 혁신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과거 황량한 사막을 기름진 논밭으로 바꾼 키부츠 정신에 이어 실리콘 와디의 기술 인재들이 전 국토를 첨단 ‘IT 옥토’로 바꿔놓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