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있는 LG 쌍둥이 빌딩. 한경DB
서울 여의도에 있는 LG 쌍둥이 빌딩. 한경DB
지난달 30일 단행된 LG그룹의 사장단·임원 인사는 다른 그룹들의 연말 인사와 다소 궤도가 달랐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현대중공업, CJ, 코오롱 등은 세대교체를 앞세워 50대 최고경영자(CEO)들을 전진 배치했다. 하지만 LG는 기존 CEO들을 대부분 유임시킨 가운데 하현회 (주)LG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부회장단을 7명으로 늘렸다.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세대교체보다 경험 많은 경영자들의 노하우와 관록을 중요시하는 LG그룹의 인사원칙과 기업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기존 LG그룹 부회장단에는 구본준 (주)LG 부회장을 필두로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포진하고 있었다. 여기에 하 부회장이 가세하면서 LG는 역대 최다인 7명의 부회장을 보유하게 됐다. 이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구 부회장이 만 66세, 가장 적은 권 부회장이 만 60세로 평균 나이는 63세에 이른다. 모두 최일선에서 경영활동을 하는 CEO들이다.
63세 부회장단 꾸린 LG… "나이 기준 획일적 세대교체 없다"
구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차 부회장이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해 6년째 재직하고 있으며 박 부회장이 4년째, 한 부회장과 권 부회장이 각각 2년째다. 특히 권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LG유플러스 등 계열사를 넘나들며 경영을 하고 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획일적인 세대교체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LG그룹 인사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실적과 미래 준비 작업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인사를 하는 것이 성과주의에 충실한 것”이라며 “가능성 있는 젊은 경영자를 발탁할 수는 있겠지만 세대교체라는 틀을 적용해 특정 나이대를 일률적으로 퇴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정 나이에 도달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풍조가 조직 내에 퍼질 경우 장기근속 임직원들의 사기가 꺾일 우려가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학계도 CEO의 경영 능력과 연령 간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대뇌 기능 등 신체적·정신적 능력은 만 60세가 넘어간다고 떨어지지 않는다”며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힘도 나이보다는 개인의 경험과 교육, 노력이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LG그룹이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며 순항하고 있는 것도 CEO들의 유임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LG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은 올해 처음으로 매출 16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 성장을 중요시하는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에 내실 있는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자체 평가다. 여기에 부회장단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경영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구본무 회장의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장수 전문경영인을 존중하는 풍토는 LG그룹의 남다른 특징이다. 지난해 말 고문으로 물러앉은 강유식 전 LG경영개발원 부회장은 주요 회의석상 등에서 구본준 부회장보다 높은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구 회장의 장남으로 이번에 LG전자에 전진 배치된 구광모 상무는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상사들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LG그룹은 CEO들을 대부분 유임시키면서도 젊은 기술인력을 대거 발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글로벌 전장(電裝)업체 하만 출신으로 LG전자 전입 1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한 박일평 최고기술책임자(CTO·54)와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두 단계 승진한 정수화 소재·생산기술원 장비그룹장(49), (주)LG에서 LG CNS로 자리를 옮겨 미래사업을 맡게 된 백상엽 사장(51) 등이 대표적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