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집결지를 옮기면서 레바논을 둘러싼 역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친사우디아라비아 성향의 사드 알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지난 4일 전격 사임한 뒤 사우디를 비롯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9일 자국민에게 레바논 철수령을 내린 것도 헤즈볼라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리리 총리는 사임을 발표하면서 “이란이 헤즈볼라를 앞세워 간섭하며 레바논 정치를 ‘납치’했다”며 “암살 위협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바논 정치판이 이란-사우디 패권 다툼의 희생양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리리 총리의 부친인 라피크 알하리리 전 총리는 이란과 시리아의 레바논 정치 개입에 반대하다가 2005년 괴한이 터뜨린 폭탄에 의해 암살됐다.

이란은 오히려 하리리 총리를 사우디 측이 사퇴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가 시킨 짓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지난달 말 재러드 쿠슈너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비밀리에 만나 ‘이란 음해용’으로 짠 계획의 일부를 실행한 것이란 주장이다.

레바논은 이슬람교 시아파와 수니파, 기독교 등 17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며 형식적으로는 종파 간 권력을 배분하고 있다. 1943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부터 내전 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75년 기독교계와 팔레스타인계 간 1차 내전이 발발한 이후 시리아, 이스라엘, 이란, 미국 등의 개입이 지속됐다. 그 결과 이슬람 지하드와 헤즈볼라 같은 무장 테러조직이 생겨났다. 2005년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로 촉발된 2차 내전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의 연속이었다.

최근 레바논 내 갈등 고조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지역 패권을 둘러싼 사우디-이란의 오랜 냉전이 새로운 공세를 예고하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