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세 번째)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왼쪽)가 6일 저녁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세 번째)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왼쪽)가 6일 저녁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 불균형’을 무기 삼아 미국과 일본 간 정상회담 협상판을 크게 흔들었다.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골프외교’와 와규 스테이크 접대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6일 오전 “미·일 무역은 공정하지도 개방되지도 않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오후 1시 정상회담을 앞두고서다.

외교·안보 문제와 경제 정책은 별개라는 점을 선언하며 경제 분야 국익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 측의 대대적인 환대를 받은 직후에 무역분쟁 카드를 꺼내든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에서 협상가·비즈니스맨으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동격서(聲東擊西)’에 일본 당혹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이날 도쿄 미국 대사관에서 마련된 미·일 기업 경영자 대상 간담회에서 예상 밖의 직설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무역은 공정하지도 개방적이지도 않았다”며 “일본과의 무역에 대한 교섭 프로세스는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일본에 연 700억달러(약 78조원)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며 “미국은 오랫동안 일본에 의한 무역적자로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도요타자동차를 거론했다. “일본의 제조사가 미국에서 차를 생산해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면서도 “일본에서는 미국차 판매가 저조하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 같은 강경 발언에 일본 경영자들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이 자리에는 손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가타노사카신야 ANA홀딩스 사장, 가토 노부아키 덴소 회장, 고모리 시케타카 후지필름홀딩스 회장,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제작소 회장, 미야나가 준이치 미쓰비시중공업 사장, 니시가와 히로토 닛산 사장, 히라노 노부유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사장, 니나미 다케시 산토리 사장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일본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외교·안보 분야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서는 방일 기간 내내 ‘이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전날 아베 총리와의 저녁식사 때도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무역 문제를 얘기하면 모두가 기분이 나빠질 것”이라며 “내일은 매우 바쁜 날이 될 것”이라고 ‘사전 경고’를 했다.

또 일본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다자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도 “올바른 사고방식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날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실무오찬 회담에 들어가기 전에도 “무역 불균형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무역·투자 활성화” 원론적 답변

트럼프 대통령이 저돌적으로 통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자 일본 측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경제·통상·투자 문제는 아소 다로 부총리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간 두 번의 미·일 경제대화를 통해 미리 의견을 나눈 덕에 미·일 상호 간에 이해가 깊었다”며 예봉을 피해 나갔다. 통상적자 문제 논의를 미·일 경제대화로 이월시키려는 의도였다.

아베 총리는 이어 “무역과 투자 활성화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며 “에너지 분야와 인프라 투자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고 미·일 경제대화를 통해 세계 경제에 공헌하는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비롯한 아시아지역 경제회의에서도 미국과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부연했다. 당혹스러워한 아베 총리와 대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소 띤 얼굴로 “일본과의 무역관계 개선을 바란다”고 다시 한번 짧게 답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뚜렷한 경제 분야 합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 내에선 ‘트럼프식 협상법’에 일본 측이 지나치게 끌려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상대방과 거래할 때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뒤 협상에 나서는 방식으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트럼프 특유의 방식에 일본이 준비 없이 휘둘렸다는 것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