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등 악재 줄이어…상업용 부동산·분양시장도 타격 우려
전문가 "실수요자도 대출받아 집사기 어려워…투자계획 다시 짜야"


정부가 24일 발표한 가계부채대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더욱 강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미 6·19부동산 대책과 8·2대책을 통해 청약조정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가 크게 강화된 가운데 이번 신(新) DTI와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도입으로 내년 이후 은행에서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최고 5%대까지 오른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중이고, 내년 4월부터는 양도소득세 중과 등 추가 규제도 시행될 예정이어서 부동산 시장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돈줄 차단…부동산 시장 상승세 꺾일 것"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겠다는 것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돈줄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지난 3년간 저금리와 유동자금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추세적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은 "과거 부동산 정책에서도 대출 규제와 세금, 금리 인상 등 돈줄을 죄는 정책의 효과가 가장 컸다"며 "현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에다 금리 상승, 신 DTI·DSR 도입이 한꺼번에 시행되면 주택시장은 수요 급감, 거래 절벽, 가격 하락 등으로 이어지는 불황기에 접어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모든 대출이 자신의 소득과 연계됨에 따라 다주택자들은 물론, 실수요자들조차 소득이 적은 경우에는 집 장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이남수 부동산 팀장은 "한마디로 기존에 집이 한 채라도 있는 사람은 추가로 집 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신 DTI 등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신혼부부나 청년층, 노년층 등도 소득 기반의 대출 형태로 바뀌면 주택 구입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실수요자들은 구제한다지만 신 DTI나 DSR을 적용하면 기본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은 대출받기가 어려운 구조가 된다"며 "오히려 자산이 많은 다주택자나 부자들은 대출에 의존하지 않아 영향이 없는데 실수요자들이 더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주택 등 부동산 투자가 왕성했던 40∼50대 이상 중장년층의 돈줄이 막히면서 임대사업 등을 목적으로 한 투자수요가 감소할 전망이다.

베이비 붐 세대 은퇴자들이 모아둔 재산과 퇴직금을 활용해 부동산임대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형 자영업자로 대거 전환했는데 앞으로 대출을 낀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부동산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거래도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우려한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내달 주거복지로드맵 발표가 예정돼 있고, 금리 인상, 수도권 입주물량 증가 등 악재가 줄줄이 대기중"이라며 "내년 4월 시행되는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절세 매물도 쏟아질 예정이어서 당분간 당장 주택시장은 숨고르기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 상업용 부동산 대출 어려워…분양시장도 타격 우려
정부가 내년 3월부터 부동산 임대업자 대출에 대해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을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주택 뿐만 아니라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투자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동안 저금리로 인해 안정적인 임대수입이 가능한 상가 투자가 급증했으나, 매매가가 오르면서 반대로 임대수익률은 크게 낮아진 상태다.

정부가 새로 정할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이 얼마로 책정될지 지켜봐야하지만, RTI가 '1' 이상으로 이자 비용보다 임대수익이 높아야 하는 경우엔 대출을 못받는 상가 등도 많을 전망이다.

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박합수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현재 강남권 수익형 부동산의 수익률이 연 3% 안팎에 불과한데 오히려 대출금리는 3%를 넘어서는 등 '역레버리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RTI를 높게 적용하면 대출 한도 제한으로 인해 상업용 부동산도 투자·매수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내년부터 수도권과 광역시 세종시의 중도금 대출 보증한도를 6억원에서 5억원으로 축소하고, 주택보증공사의 중도금 대출 보증 비율을 90%에서 80%로 축소하기로 하면서 아파트 등 신규 분양시장에 적잖은 타격이 우려된다.

이 경우 수도권 등지의 중도금 대출 금액이 줄어들게 되고 경기 침체로 인한 미입주 물량 발생시 건설사가 입주자를 대신해 중도금 대출을 대위변제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커진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은행이 중도금 대출을 해주지 않아 사업이 어려운데 분양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이 더 축소되면 그만큼 분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건설사는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자체 신용으로 중도금을 알선해 줘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건산연 허윤경 연구위원은 "그동안 건설사들은 분양보증을 받게 되면 미입주 등에 따른 리스크를 10%만 지면 됐지만 앞으로는 20%로 늘어나게 된다"며 "건설사 입장에서 사업이 힘들어져 분양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주택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 건설사들의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다른 건설사의 임원은 "향후 주택경기 침체로 미입주 공포가 커진 가운데 건설사의 대위변제 부담이 커진다면 주택사업을 공격적으로 하기 어려워진다"며 "대형 건설사들은 보수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자금여력이 없는 중소 건설사들은 부도 위험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금 대출의 이자 부담이 높이지면서 분양 계약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리얼투데이 양지영 실장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 축소로 은행들은 건설사의 재무구조나 분양단지의 사업성을 더욱 꼼꼼히 따져볼 것이고, 사업성이 없는 곳은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면서 대출 이자가 높아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분양계약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사업성 좋은 단지로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DSR 비율 등 세부 기준 관건…과도한 대출은 지양해야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대책의 강도가 예상보다 세지 않아 주택 가격이 급락하는 등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신 DTI나 DSR이 모두 내년 이후 도입되는데다 아직 DSR 비율 등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WM리서치부 부동산연구위원은 "발표 내용이 예측했던 수준이고 단계적인 규제여서 당장 주택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 같진 않다"며 "내년 규제 강화 전에 미리 투자를 마무리 짓고 대출을 앞당겨 받으려는 사람이 나오면서 체감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윤경 위원은 "연간 소득에서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따지는 DSR 비율을 얼마로 정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고, 이남수 팀장은 "은행 입장에서는 DSR을 너무 높이면 대출 상품을 팔 수가 없는 문제가 있고, 비율이 너무 낮으면 규제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대출에 대해서는 신 DTI 규제 등을 소급적용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대출금 상환 목적의 부동산 투매 우려가 줄었다는 점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대출 환경이 크게 바뀌는 만큼 앞으로 과도한 대출을 통한 부동산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무엇보다 지금은 금리 상승기여서 과도한 대출보다는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한다"며 "부동산을 살 때 LTV 30% 이내, 원리금 상환액이 월 소득의 30% 이내로 낮추는 보수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영진 센터장은 "1인 1주택이 아니라면 돈 빌리기 어렵고 세금 부담도 커지는 시대가 됐다"며 "다주택자들은 앞으로 추가 대출이 어려워짐에 따라 내달 발표될 주거복지로드맵을 봐가며 기존 주택을 처분할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지 등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