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어느 금속가공 여사장의 하소연
“저는 작년 말까지 2년 반 동안 월급을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월 70만원의 국민연금으로 생활했습니다. 올 들어 수주가 어느 정도 회복돼 허리를 펼 만하니 최저임금 급등 소식에 머릿속이 하얘질 판입니다.”

수도권 임차공장에서 금속가공을 하는 여사장 L씨(65)의 하소연이다. 종업원 8명을 둔 L사장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경영 일선에 나섰다. 작년까지 3년간은 적자였다. 그런데도 단 하루도 월급을 늦게 주거나 월 600만원이 넘는 임차료를 체불한 적이 없다. 그 대신 자신은 늘 빈손이었다. 스트레스로 망막의 실핏줄이 터져 눈은 늘 벌겋고 여유자금 마련을 위해 집을 서울에서 경기로 이전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임차료를 내는 것을 본 건물주가 임차료를 깎아줬다. L사장이 문을 닫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일은 나아지겠지’하는 막연한 ‘희망’ 덕분이었다.

소공인, 제조업의 80% 차지

L사장처럼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인이 수두룩하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는 ‘소공인’이다. 소공인은 ‘제조업을 영위하는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의 사업자’를 의미한다. ‘그렇게 작은 업체들이 있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내 제조업체 39만2600개 중 소공인 사업체가 31만6800개에 이른다. 제조업체의 80.7%를 차지한다. 서울만 해도 구로동 신도림동의 금속가공업체, 창신동 일대의 섬유봉제업, 상봉동 일대의 영세기업들 대부분이 소공인이다. 경기 일산 양주 포천 동두천은 물론 대구나 부산 인근에도 이런 기업이 산재해 있다.

이들의 어려움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1147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2017년 중소기업 추석자금 수요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소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 두 곳 중 한 곳(47%)이 자금 확보에 곤란을 겪고 있다. 추석 상여금 지급 업체는 56.1%로, 작년(61.6%)보다 5.5%포인트 줄었다.

소공인은 주로 협력업체다. 이들의 어려움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일감이 사라지는 데다 기존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납품단가가 오히려 하락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극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 방법을 써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파고 앞에 선 이들은 앞으로 2~3년이 선택의 기로라고 입을 모은다. 방법은 ‘나만의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일이다. 그게 안 되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속도 조절해야"

L사장은 “새로 임명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할 일이 많겠지만 가장 먼저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을 막아줄 것”을 호소했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에 대해서도 “기업 형편을 충분히 조사한 뒤 그에 맞는 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저임금이 내년 수준(시간당 7530원)으로 당분간 동결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지만 지속적으로 오르면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추석에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줄 형편이 안 돼 5만원짜리 선물세트를 돌릴 생각이지만 내년엔 이마저도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추석연휴 기간에 남몰래 눈물짓는 중소기업인들도 있을 듯하다. 이미 L사장이 있는 공장지대 근처에선 최근 몇 명의 중소기업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새로 임명될 초대 중기부 장관은 거창한 비전을 선포하기 전에 생산현장의 실핏줄인 소공인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실핏줄이 제 기능을 못하면 동맥마저 막힐지 모른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