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왼쪽 두 번째)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소 조선사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지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왼쪽 두 번째)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소 조선사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지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국책은행을 통해 2020년까지 중소 조선사에 1000억원 규모의 선수금환급보증(RG)을 공급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내용의 중소 조선사 지원 방안을 24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올 들어 대형 조선사 중심으로 신규 수주가 잇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경영난에 허덕이는 중소 조선사 지원을 위한 것이다. 일감이 없는 데다 어렵게 수주하더라도 은행들이 RG를 해주지 않는 등 중소 조선사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고, 그 결과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중소조선사 일단 살린다”

조선사들이 선박수주를 하기 위해선 은행의 RG 발급이 필수다. RG가 있어야 선주와 수주계약을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5년간 RG는 대형 조선사에 집중돼 왔다. 지난해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신규 선박에 대한 은행의 RG 발급액은 3조5000억원가량으로 이 가운데 2.3%만이 중소 조선사 몫이었다. 특히 글로벌 ‘수주가뭄’이 극심했던 지난해 하반기 이후엔 이 같은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 올 상반기 RG 발급액을 보면 대형 조선사가 2조1000억원의 RG를 발급받은 반면 중소 조선사는 199억원을 공급받는 데 그쳤다.
중소조선사에 1000억 지원… RG에 발목 잡힌 선박 수주 풀리나
중소조선사에 1000억 지원… RG에 발목 잡힌 선박 수주 풀리나
RG가 막히면서 중소 조선사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어렵게 일감을 따냈는데도 은행에서 RG 발급을 거절하는 바람에 수주계약이 파기된 사례도 많다는 게 업계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경영난 탓으로 중소 조선사가 문을 닫게 되면 지역경제에도 큰 충격을 준다는 데 있다. 현대중공업 계열인 군산조선소가 문 닫으면서 전북지역의 경기가 침체된 게 단적인 예다.

이날 정부 대책은 ‘RG발급 중단→중소 조선사 경영난 심화→지역경제 위축’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을 통해 연간 550억원가량의 RG를 공급할 계획이다. 우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통해 4년간 1000억원의 RG를 중소 조선사에 공급하기로 했다. 51개 중소 조선사 중 재무상태가 양호하고 선박건조 능력이 있는 30여 개 조선사가 수혜를 볼 전망이다. 산업·기업은행의 손실 위험을 줄여주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이 RG 발급액의 75%까지 보증해주는 보완장치도 마련했다.

시중은행의 RG 공급 확대도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 발주 선박 등에 대해 시중은행이 연간 300억원가량의 RG를 공급하도록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동안 시중은행들이 조선불황을 이유로 과도하게 RG를 줄이고, 그 부담을 국책은행들에 전가해 왔다”며 “부실위험이 적은 선박발주에 대해선 RG를 발급하라는 게 정부 주문”이라고 설명했다.

◆RG 공급확대 효과 있을까

정부는 중소 조선사에 대한 시중은행의 RG 발급을 확대하기 위해 민관 정례 실무협의체를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분기마다 회의를 열어 시중은행의 RG 발급현황, 발급거절 사유 등을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이 정부 방침에 적극 동참할지 미지수라는 관측도 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에 대한 RG를 내주긴 하지만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며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중소 조선사 RG를 대폭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대책이 ‘부실기업 퇴출’이란 기존 조선업 구조조정 방향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 조선사 중 상당수는 저가수주 위주 영업을 해왔는데 이번 RG 공급 확대로 이른바 ‘좀비기업’을 연명시켜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에 대해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이번 대책은 대형 3사와 중견 조선사의 협력업체들인 중소 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향후 조선업황이 회복될 때를 대비해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태명/안대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