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오른쪽)과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세제개편안을 발표 하고 있다. 므누신 장관은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 미국 경제가 연 3%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오른쪽)과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세제개편안을 발표 하고 있다. 므누신 장관은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 미국 경제가 연 3%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법인세율을 단번에 20%포인트 낮추는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기업과 개인의 소득을 세금으로 거두기보다 투자와 소비에 쓰도록 유도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감세로 미국을 글로벌 기업이 몰려드는 ‘기업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있다. 감세로 세수가 10년간 7조달러(약 7900조원)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에도, 트럼프 정부는 성장 덕분에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국은 유력 대선후보 다섯 명 중 네 명이 법인세 증세를 추진하는 등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어 미국에서 감세가 시작되면 기업 이탈, 투자 축소 등이 우려된다.
[미국 세제개편안 발표] '감세 혁명' 승부수 던진 트럼프…"성장·일자리 창출로 세수 더 늘 것"
◆역대 최대 감세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율을 현행 최고 3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종전 7개 과표구간을 없앤 단일세율이다. 이렇게 되면 애플 등 미국 기업은 높은 법인세를 피하려고 본사를 해외로 옮기거나, 이익을 해외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진다. 조세피난지역으로 꼽히는 아일랜드의 법인세율 12.5%와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애플 등이 해외에 쌓아둔 2조6000억달러를 미국으로 들여와 쓸 수 있게 특별 일회성 세율도 도입한다. 블룸버그통신은 10%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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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와 로펌, 부동산 개발업체 등이 사업할 때 활용해온 도관회사(pass-through business)에 적용하는 세율도 현행 39.6%에서 15%로 내려간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9.6%에서 35%로 인하한다. 과세구간도 7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감세 효과를 높인다. 표준공제를 현재 부부합산 1만2700달러(1인당 6350달러)에서 두 배 수준인 2만4000달러로 확대한다. 연 2만4000달러 이하 가계는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뜻이다.

대신 수많은 공제를 단순화했다. 주(지방)소득세에 대한 공제를 없애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등 주세가 높은 지역의 주민은 연방소득세 부담이 커졌다. 이들 주는 이민자가 많아 민주당에 몰표를 준 지역이다.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입한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위해 부과하던 자본소득과 배당에 추가한 세금 3.8%도 없앤다.

상속세는 아예 폐지한다. 백악관은 “중소상공인 농장주 등이 가업을 물려주기 위해 복잡한 세금 플랜을 짜는 걸 없애겠다”며 “상속세 때문에 가업을 물려받지 못하고 팔아야 하는 경우를 없앨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방법은 개인 545만달러, 부부 1090만달러 이하는 세금 없이 상속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면 상속세 40%를 내야 한다.

국경조정세는 이번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화당은 수입품에 20% 세금을 물리는 국경조정세 도입을 추진해왔다.

◆기대되는 효과는

트럼프 정부의 목표는 간단하다. 감세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및 경제 성장이다. 백악관은 “사상 최대 세제개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과거 도널드 레이건 정부(1981년)와 조지 W 부시 정부(2001년)의 감세 규모는 1000억달러 수준(첫해 세수 감소 기준)이었으나 이번엔 그 세 배에 달하는 2880억달러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미국 의회 합동조세위원회(JCT)는 법인세율 20%포인트 인하로만 10년간 2조달러의 세수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세수 보완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수를 확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세제개편은 글로벌 감세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법인세율 15%는 프랑스(33%), 일본·독일(30%), 영국(20%) 등 선진국뿐 아니라 한국(24%)보다도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22.5%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 법인세가 인하되면 미국으로 자본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서 각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역주행

한국은 감세 경쟁이 불붙은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너도나도 법인세와 소득세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고소득자와 자본소득 과세를 강화하고 법인세 실효세율을 인상한 뒤에도 재원이 부족하면 법인세 명목세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 캠프는 과세표준 500억원 이상 대기업은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현행 최고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과세구간을 과세표준 5억원 초과에서 3억원 초과로 높이고 세율도 40%에서 42%로 올리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대기업과 고소득층 과세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문 후보(연 6조3000억원 증세)보다 훨씬 많은 연 23조7000억원의 증세 계획을 내놨다.

세무업계에서는 이 같은 공약이 실현되면 납세구조가 더 왜곡될 것으로 우려한다. 2015년 기준 근로소득세는 소득 상위 10%가 75.9%를 부담했다. 법인세는 납세액 상위 1%가 75.9%를 냈다. 소득·법인세율이 인상되면 ‘납세 편중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현석/이상열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