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주가 사상 최고치 > 갤럭시 스마트폰 화면에 27일 2.43%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삼성전자 주가가 띄워져 있다. 2분기에는 4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갤럭시S8의 실적이 반영돼 1분기를 뛰어넘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삼성전자 주가 사상 최고치 > 갤럭시 스마트폰 화면에 27일 2.43%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삼성전자 주가가 띄워져 있다. 2분기에는 4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갤럭시S8의 실적이 반영돼 1분기를 뛰어넘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삼성전자가 27일 자사주(13.3%) 소각과 지주회사 전환 포기 카드를 함께 내놓은 것은 상당 기간 현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표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삼성전자 경영권을 바라보는 이재용 부회장의 시각과 판단이 종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영권 유지의 방어막 역할을 하던 자사주를 소각하고 나면 18% 남짓한 지분으로 시가총액 300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시험대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분율 50%가 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합하면 경영권을 놓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어떤 생각에서 그 시험대를 자청한 것일까. 세계적으로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 자사주 소각 왜? ‘오너일가 지배력 높이는 도구’ 비판 불식

이재용 '경영권 안전핀' 스스로 제거…'승계 논란' 단칼에 끊어
삼성전자가 소각하겠다고 발표한 자사주는 보통주 1798만1686주와 우선주 322만9693주 등으로 전체 삼성전자 발행주식의 13.3%에 달한다. 45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삼성전자는 2015년 11조원의 자사주 신규 매입 및 소각을 발표하면서도 기존에 보유하던 자사주는 소각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 향후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인적분할 및 주식 교환 등 과정에서 자사주에 부여될 의결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호 세력을 모을 수 있는 자사주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또 자사주는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선 현금과 거의 동일한 효과를 갖는 지급수단이다.

이런 다목적 카드를 전량 소각하기로 한 것은 자사주를 활용해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높인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삼성전자가 오너에게 유리하게 지배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시장의 경계심을 한방에 날려버린 파격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자사주 소각 자체로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효과도 크다. 45조원에 달하는 주식이 사라지면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과 주식가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2) 지주사 전환 왜 어렵나 재벌 개혁·규제 그물망에 ‘좌초’

이날 삼성전자의 발표는 지난해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요구한 주주 제안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당시 삼성전자 지분 0.62%를 매입한 엘리엇은 △삼성전자 분할 및 삼성그룹 지주사 설립 △분할된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나스닥 상장 △30조원 규모의 배당 △독립 사외이사 3명 추가 등 네 가지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회계법인 KPMG, 법무법인 광장 등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5개월에 걸쳐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득실을 따졌다. 이날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한 것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뢰처럼 묻혀 있는 법과 제도상의 규제, 사회적 논란과 오해를 돌파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55%)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왔다.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과 보험업법에 따라 금융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삼성전자 지분 일부 또는 전부를 일정 기간 내 계열사에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주식거래에 엄청난 돈이 들 뿐만 아니라 여론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당국이 선선히 승인해줄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초 금융당국에 지주사 전환 계획을 타진했다가 부정적 답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이후 일각에서 ‘재벌 개혁’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삼성으로선 부담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기업을 인적분할(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분할 회사 지분을 갖는 방식)로 쪼갤 때 지주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사업회사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전자를 분할해도 지주(투자)회사가 자사주만큼의 사업회사 신주를 가질 수 없게 돼 지주회사 전환의 실익이 사라진다. 이명진 삼성전자 전무는 “이사회 결의 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개월에서 1년 정도인데 이 기간에 법이 개정될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발표하면 법 개정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토로했다.

(3) 경영권 유지할 수 있나 “기업가치 높이는 게 최선의 방어”

13.3%의 삼성전자 자사주가 소각되면 이 부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은 종전 31.48%에서 18.18%로 줄어든다. 당장 국내 1위 대기업이 해외 헤지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은 소유 지분이 아니라 실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주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시절부터 유지돼온 미래전략실을 전격 해체한 것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조직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요구를 거부당한 엘리엇은 이날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은 중요한 진전”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인사, 재무, 경영전략 등에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관행들을 대거 손질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최선책은 기업가치 제고”라며 “실적 호전으로 주가가 뛰고 있는 기업을 누가 공격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좌동욱/노경목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