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佛·加 지도자들 강력 비판 …힐러리 "이건 우리 모습 아냐"
이란, 미국인 입국 금지…"모욕적 처사에 똑같이 맞대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뽑아든 '초강경 반(反) 이민 정책'으로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잠재적 테러 위험이 있는 7개 무슬림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과 비자발급이 중단되고, 일부 항공사에서 미국행 발권이 중단되는가 하면, 뉴욕 JFK 국제공항 등에서는 난민 등이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백악관을 상대로 한 시민단체의 소송이 시작됐고 공항 곳곳에서 반이민 정책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정치인들이 앞다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세계 주요 정상들도 트럼프 정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란은 모욕적 처사에 대해 동일하게 맞대응하겠다면서 이를 철회할 때까지 미국인의 이란 입국을 금한다고 경고했다.

◇ 발 묶인 여행객…깨져버린 난민들의 꿈
카이로에서 뉴욕행 이집트에어 항공기에 탑승하려던 이라크인 푸아드 샤레프(51)씨 가족 5명은 트럼프의 비자 제한 조처가 즉각 실행된 직후 탑승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이라크 쿠르드자치구의 아르빌로 되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샤레프씨는 "집도, 차도, 가구도 다 팔고, 나와 아내는 직장도 그만뒀다.

특별이민비자로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정착하려던 계획이었는데 트럼프가 우리 가족의 삶을 망가뜨렸다"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 아마르 사완(40)씨는 "TV 뉴스로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장면을 보고는 벼락에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꿈과 희망이 물거품이 돼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 난민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라 2만7천여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의 미국행이 좌절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지난 회계연도에 총 8만4천995명의 난민을 받아들였으며, 그 중 1만2천587명이 시리아 출신 난민이었다.

유효한 미국 비자를 소지한 이란인 3명도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이란에서 미국으로 가려는 여행객들은 빈 공항을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여행 도중 행정명령 발효로 입국이 보류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 땅에 발을 내디뎠음에도 억류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행정명령 발효 직후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라크 난민 2명이 공항에 억류됐다.

이들 중 한 명은 장기간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에서 통역·엔지니어로 일했던 인물인데 일단 억류에서는 풀려났다.

항공사들의 탑승 거부도 잇따르고 있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미국 입국을 거부당할 우려가 있는 7명의 승객에 대해 탑승 중지 조처를 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유학 중인 한 이란 학생은 "터키항공에서 구매한 2월 4일 출발 항공권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에티하드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 등 일부 항공사가 7개국 국민 출신의 미국행 항공권 발권을 중단했다.

트럼프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미국 잠입을 차단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미국에 가족과 생활근거지를 둔 무슬림 국가 출신 영주권자까지도 '입국 제한 리스트'에 오르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이란, 이라크 등 7개 무슬림 국가뿐 아니라 이들 국가와 다른 나라의 국적을 동시에 가진 이중국적자에 대해서도 미국 입국이 일시 중단되면서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정책 추진 과정 등에 미뤄볼 때 입국 금지 대상국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CNN에 트럼프 행정부가 "매우 공격적"이라며 행정명령 대상이 된 7개 국가는 "시작점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추가 국가 지정을 놓고 조율 중이며, 선정 기준은 "미국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미 시민단체부터 무슬림 국가 정부까지…거세지는 반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국가이민법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뉴욕 공항에서 억류된 이라크인들과 함께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아랍 반차별위원회의 아베드 아유브 국장은 "행정명령이 가족들을 강제로 갈라놓았다.

이는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아랍-미국 공동체에 매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여파를 몰고 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 주요 공항에서는 이번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도 이번 행정명령 발동에 강하게 반발했다.

인도 출신의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가 행정명령을 '고통스럽다'라고 표현했고, 이민자 가정 출신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비슷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란 외무부는 "미국의 모욕적인 행정명령에 대응해 이란도 미국인의 입국을 현행과 같이 계속 금지한다.

불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국제법을 위반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입국제한 7개국에 포함된 예멘 정부도 짙은 실망감과 함께 유감을 표시했다.

미국 정계에서도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을 가리켜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this is not who we are)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원인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도 "이 끔찍한 분쟁의 선량한 피해자들을 돕는 데 법적,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크리스 머피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은 "만약 오늘 침묵을 택했다면 내게 다시는 미국이 도덕적 리더십에 대해 말하지 말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트럼프의 정책에 유럽이 대항하자는 메시지를 던졌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테러에 맞서 아무리 단호하게 싸운다고 할지라도 어느 특정한 출신 지역과 신념을 가진 이들 모두에게 혐의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위터에서 "박해, 그리고 테러와 전쟁을 피해 도망온 사람들에게 '캐나다 국민은 종교와 관계없이 여러분을 환영한다'는 점을 밝힌다'면서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다.

캐나다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의 니컬라 스터전 수반도 트뤼도 총리의 트윗 글을 리트윗하면서 "스코틀랜드로 오는 것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파문이 확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은 무슬림 (입국)금지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트럼프 정책의 의회내 지지 중심축을 맡고 있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은 "이것은 종교 테스트가 아니다.

전 세계 무슬림 대다수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권혜진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