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복 노력 중단, 테러 퇴치위해 누구와도 협력"
"주이스라엘 대사관 예루살렘으로 이전"…아랍권 반발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추진할 중동정책의 골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역대 미국 정권들은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등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사태 해결은커녕 출구전략도 찾지 못했다.

무모하리만큼 단순하고 때로는 명쾌한 외교 해법을 예고하는 트럼프가 중동정책에서는 어떤 접근법을 시도할 것인지 뜨거운 관심사다.

트럼프는 최근 당선 '감사투어'를 시작하면서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자신의 중동정책 골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내놨다.

당시에는 국방장관 깜짝 인선 발표에 묻혀 언론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동 정책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위협에 맞설 미국의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방향 전환을 시사한 것으로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는 "체제전복 시도를 중단할 것이며 정권과 사람을 전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중동 분쟁에 6조 달러를 퍼부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안정이지 혼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슬람국가(IS)와 이슬람 급진 테러세력을 퇴치하는 노력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어떤 국가와도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가를 상대할 때는 무엇이든 공동의 이해를 추구할 것이며 평화와 이해, 친선의 새로운 시대를 추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발언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추구할 중동정책을 가늠하게 해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과도 다르고 그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더욱 다르다.

요약하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축출 노력을 중단할 것이며, 역내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할 것이며,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란에 대한 정책도 오바마 정부의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 정책에서 물러서는 등 적대적 방향으로 흐르겠지만, 정권 교체를 명시적 목표로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같은 접근법을 과거의 실수에서 깨달은 새로운 외교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 오마바보다는 더 강경한 정책을 취하겠지만, 부시보다는 군사적 개입을 줄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에서도 역대 정권과는 판이한 광폭 노선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선임 고문인 켈리엔 콘웨이는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현재의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루살렘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최종 지위 협상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 미 국무부의 공식 입장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예루살렘에는 어떤 국가의 주권도 미친 적이 없으며, 최종 지위 협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수십 년째 지켜왔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여러 차례에 걸쳐 대사관을 조속히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의향을 이스라엘 측에 밝혀왔다.

지난해 9월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대사관 이전을 개인적으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한 미국 대통령 후보가 트럼프뿐만은 아니다.

빌 클린턴이나 부시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비슷한 약속을 내놨지만, 막상 취임한 뒤론 흐지부지됐다.

미국이 실제로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경우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대다수 아랍 국가들의 강경 반발이 예상된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가자지구에 이르는 자치지역에서 유혈 충돌이 격화하고, 예루살렘에서는 테러가 일상화할 수 있으며, 팔레스타인 연대를 외치는 아랍권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스라엘 언론에서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