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전방위 수사·법원 엄벌주의 맞물려…'정액제 수임료' 책정도

최근 대기업을 향한 검찰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전개되면서 국내 주요 로펌들이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변호사 공급 확대에 따른 경쟁 격화와 '전관' 영업 제한 등으로 인해 시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검찰의 '십자포화' 공세로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앞다퉈 대형 로펌에 변호를 의뢰한 데 따른 결과다.

이런 상황에 일각에선 대기업을 상대로 '정액제 수임료'를 받는 관행이 생겨나고 있고, 그 수치는세자릿수에 이른다는 소문까지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 총수들이 검찰 수사를 받은 대기업들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광장, 태평양 등 국내 주요 로펌에 사건을 맡겨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한화그룹과 CJ그룹은 수십억원을 변호사 비용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최근 회사 경영비리와 관련해 김앤장을 중심으로 몇몇 대형 로펌으로 호화 변호인단을꾸렸다.

일각에선 '100억원' 등 역대 최고액 수준의 수임료를 변호사 선임에 책정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100억원설은 지난해 한 로펌에서 흘러나온 얘기로 알고 있으며 근거 없는 수치"라며 "회사에선 필요 최소한의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형사사건의 통상 수임료는 기본 착수금과 무죄나 감형, 불구속, 보석, 구속집행정지 등의 정도에 따라 받는 성공보수로 구성돼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형사사건 변호사의 성공보수 약정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라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후 형사사건 변호인을 선임할 때에는 착수금과 함께 '성공보수' 성격의 비용까지 얹어 함께 지급하는 형태로 비용을 지불하는 사례가 많다.

재판의 난이도와 심급에 따라 전체 수임료가 정해진다.

대형 로펌 수임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일각에서는 소위 일종의 상한(캡)을 씌워놓는 '정액제' 수임료가 등장하기도 한다.

정액제 수임료란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세세하게 구별해 책정하는 대신 미리 맞춰놓은 수임료만을 지급하는 것으로, 로펌들이 정해진 수임료 상한 내에서만 변호활동을 하는 새로운 풍토가 형성되고 있다.

국내 주요 로펌의 경우 착수금은 보통 5억∼10억원 사이에서 정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죄나 집행유예의 가치는 20억∼30억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구속기소돼 대법원까지 거쳐 풀려날 경우 수임료 총액은 100억원대까지 이르는 사례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한선을 정해놓았다가 무죄, 보석 등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경우 일부 수임료를 제하는 형태로 정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가 주로 기업 총수의 비리 규명에 맞춰져 있다보니 총수의 안위와 경영 공백을 우려한 기업들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아낌없이 내놓는 분위기다.

로펌들도 대기업 사건은 일단 수임만 해놓으면 '대박'이라며 적극적으로 영업전에 나선다.

기업들이 이처럼 거액의 수임료를 아끼지 않는 것은 기업 총수의 구속과 실형이 기업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법원도 경제사범에 대해 '엄벌주의' 분위기가 많아 대기업들은 더욱더 거액의 수임료를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선 대형 로펌을 선임하지 않았다가 혹시라도 불리한 결과를 받을 경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을 우려해 무조건 대형 로펌을 찾는 경우도 많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개인 사무실을 차린 일부 '전관' 변호사들이 형사사건 수임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의혹으로 잇따라 기소된 것도 대형 로펌 선호 추세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이전에도 형사사건이 대형 로펌들로 몰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조용히 사건을 처리하기 바라는 의뢰인들은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곤 했었다"며 "최근 전관 변호사 비리로 인해 형사사건들이 대형 로펌에 더욱 몰리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