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포퓰리즘 위험성 경고…환구시보와 논쟁도

진병태·정주호 특파원 = 중국의 유연한 외교를 주창해온 외교원로 우젠민(吳建民·77) 전 중국 외교학원 원장이 18일 새벽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인민망은 우 전 원장이 이날 새벽 4시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한 지하차도에서 타고 가던 뷰익 승용차가 화단을 들이받으면서 동승한 우한대 정보학원 주샤오츠(朱曉馳) 교수와 함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함께 타고 가던 우 전 원장의 비서, 우한대 교직원 등 3명은 부상해 병원에 후송됐다.

우 전 원장은 1939년 충칭(重慶)에서 태어나 1959년 베이징외국어학원 불문과를 졸업한뒤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그는 선비의 풍모를 지닌 장수라는 의미의 유장(儒將)으로 불려왔다.

우 전 원장은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중국의 전직 지도자들의 전담 프랑스어 통역사로 일했다.

1965년 처음 대면했던 마오쩌둥이 우젠민의 이름을 묻고는 "너의 오(吳)나라는 이미 망한 나라가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면서 우 전 원장의 긴장을 풀어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71년 중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에 올랐을 당시 중국의 첫 유엔 상주직원으로 파견돼 근무하다 1990년대엔 외교부 신문사 사장과 대변인을 거쳐 주(駐)네덜란드, 프랑스 대사를 역임하면서 50년 가까이 외교관 생활을 한 중국 외교가의 원로다.

그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외교학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후진들을 양성했다.

외교학원은 외교관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급 교육기관이다.

또 2003년 12월엔 세계박람회사무국(BIE)의 첫 아시아인 의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우 전 원장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외교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칼집에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힘을 기르며 기다린다) 외교전략의 오랜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의 외교가 민족주의의 볼모가 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은 중국에서도 매우 위험하다.

민족주의는 종종 '애국'을 구호로 내세우고, 포퓰리즘은 '위민'의 모양새로 내걸고 있지만 그 본질은 개혁·개방에 반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지난 4월 민족주의 논조의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매우 극단적"이라고 비판하자 환구시보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우 전 원장을 구시대 외교관의 전형이라고 반박, '매파·비둘기파 논쟁'을 벌어지기도 했다.

우 전 원장은 당시 중국이 폐쇄적 관성을 타파하고 폐쇄주의적 사고를 경계하는 한편 세계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 개방적 태도를 갖춰야 한다면서 하지만 현재의 시대적 어젠다를 '평화발전'으로 삼아, 확장하지 않고, 패권을 논의하지 않는 외교전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최근 미국 및 주변국과 충돌하며 자국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최근의 외교행보를 은연중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중국 네티즌들도 우 전 원장에게 '진실을 말해온 바른 외교관'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그의 사망 소식에 추도의 글을 올렸다.

주중 프랑스대사관도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인들은 프랑스를 이해해주고 중국과 프랑스 관계에 크게 공헌한 위대한 친구를 잃었다"는 애도문을 발표했다.

(베이징·상하이=연합뉴스) jb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