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겐 높은 '스승의 문턱'
[ 김봉구 기자 ] 취업 스트레스가 심한 대학생 유정환씨(가명)는 학과 교수와의 상담에 크게 실망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적성엔 맞을지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고 싶었지만 주어진 상담시간은 한 학기에 한 시간이었다. 그것도 5~6명씩 짝지어 집단상담하는 자리였다.

유씨는 “여럿이 함께 상담 받다보니 하고 싶은 얘기를 미처 못했다. 순서도 제대로 안 돌아왔고 마음속 고민을 꺼내놓을 만한 자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교수님의 다른 약속과 겹쳐서 원래 한 시간인 상담도 실제로는 30~40분만 했다. 겉치레 같았다”고도 했다.

‘스승의 날’이지만 정작 대학생들이 필요할 때 찾고 싶은 스승의 문턱은 높다. 재임용과 승진이 중요한 교수들은 논문을 쓰느라 학생상담은 뒷전이다. 상담을 해도 형식적 상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이 교수에게 논문 ‘실적’을 강하게 요구해 빚어진 부작용인 셈이다.

경기도의 한 대학 재학생 박정아씨(가명)도 “냉정하게 생각하면 학교 친구들도 경쟁 상대인데 집단상담 식으로 하는 건 불만”이라며 “1:1 상담에서도 진짜 고민되는 얘기는 하기 어렵지 않느냐. (집단상담이) 좋은 점도 있겠지만 교수님 편의를 위해 하는 것 같다. 그나마도 한 학기 한 번 정도”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 소재 유명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 교수는 “학교는 대학평가 순위에 신경을 쓰고, 대학평가는 교수 연구실적을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논문 편수를 채우는 게 우선”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런 사정을 아는 학생들도 교수들을 잘 찾지 않는다. 기형적 자화상”이라고 토로했다.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를 갖기도 어려울 뿐더러 교수도 연구가 우선이라 제자들 얘기를 들어줄 만한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문턱 높은 교수 대신 강사를 찾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세대 졸업생 이모씨는 “학생 입장에선 교수나 강사나 같은 교수다. 또 젊은 편인 강사들이 취업시장 형편도 잘 알고, 얘기도 통하는 편이어서 교수보다는 강사와 만나 상담하곤 했다”고 귀띔했다.

호남지역 사립대 강사 김모씨는 “개인적으로 연락 와서 고민 상담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강사는 배정된 연구실이 없어 카페나 빈 강의실에서 만나곤 한다”며 “가르치는 입장에서 마땅히 할 일이고 보람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전했다.

강사들은 출강하는 대학에서 시간당 강의료만 지급받는다. 학생상담 관련 수당이나 지원은 전혀 없다. 전임교수에 비해 여건이 턱없이 열악함에도 실제로 학생들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은 강사에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강의평가’라는 또 하나의 권력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저자 김민섭씨는 “강의평가는 (강사에게) 자기만족을 넘어 생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임교수는 학생들의 강의평가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평가 점수가 나쁜 강사는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관계자는 “대학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예를 들어 ‘강의평가 4점 만점에 3.5점 밑이면 재임용 안한다, 혹은 경고 2회 이상 누적되면 강의 못한다’ 이런 식으로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전임교원이야 강의평가 결과에 특별히 신경 안 써도 되지만 강사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강의평가 점수가 걸려 있는 강사는 학생들을 외면하기 힘들다는 것. 가르침에 있어 굳이 교수와 강사를 나눌 필요는 없으나, 응당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교수가 학생들과 덜 만나는 구조적 환경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영남의 한 사립대 교무처장은 “교수는 교수업적평가 비중에 영향을 받는다. 평가항목 중 연구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 이를 줄여 봉사나 학생지도 항목을 강화하는 쪽으로 설계해야 할 것”이라며 “대학이 가치와 목표에 따라 교수에게 요구하는 덕목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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