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바보' 이채원 "앞으로 10년도 도망만 다니며 살겠다"
'10년 투자 펀드' 누적 수익 156%
기업 '내재가치' 투자 철학이 비결
하반기 자산가치 높은 기업이 부각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부사장은 여의도 금융투자 업계에서 '바보'로 불린다. 주식 투자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로 지인들은 그를 가리켜 '주식 바보' '주식 정신병자' 라고 한다.

이 부사장 스스로도 자신은 젓가락질 하나 제대로 못하고 하루 종일 '주식'만 생각하는 '주식에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2006년 4월 만든 한국밸류운용의 '10년 투자 펀드'가 올해로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이 펀드는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 된 주식을 찾아 장기투자하는 이른바 '가치투자' 철학을 지향한다.

1038억원으로 시작한 펀드 설정액은 현재 1조5600억원으로 늘어났고 설정 후 누적 수익률은 156.64%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40%)의 4배에 달하는 성적이다.

◆ '성장의 함정' 조심해야

한국밸류운용은 25일 펀드 출범 10주년을 맞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고객 550명을 초청해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사장은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하면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만으로 펀드를 운용해왔다"며 "앞으로 10년도 위험에서 최대한 도망치며 원금을 잃지 않고 금리 인상 수준 이상의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 때도 '내재가치'를 따진다. 밀가루 등 재료비와 짜장면 가게의 월세, 짜장면 맛 등 양적, 질적 내재가치를 따져 과연 '이 가격이 합당한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재가치를 따진 뒤 저평가 된 주식을 골라 장기투자하게 되면 손실에 대한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게 이 부사장 판단이다.

그는 이날 토크 콘서트 행사에서 "아무리 좋은 기업이어도 내재가치에 비해 가격이 비싸면 합리적인 투자가 아니다"며 "특히 '성장의 함정'에 빠져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성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하거나, 기대한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 주가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통신업종 대장주 중 하나인 SK텔레콤 주가는 1999년 50만원 대까지 갔지만 현재 2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기간 이익은 6배 늘었으나 시장이 기대한만큼의 성장을 거두지 못하면서 주가는 반토막 났다.

이 부사장은 "최고의 주식이어도 이미 오른 주식은 사기 어렵다"며 최근 '성장성'에 주목해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는 화장품, 바이오, 핀테크 등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인수합병 증가·배당 확대 주목

최근 2년 간 '10년 투자 펀드'의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다. 1년과 2년 수익률은 각각 -6.96%, -2.56%에 머물렀고 올해 들어서도 0.11% 수익률에 그쳤다.

지난해부터 시장이 '성장주' 위주로 쏠리면서 가치주를 중요시하는 '10년 투자 펀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익률 부진이 계속되자 지난해 이 펀드에서 851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 부사장은 그러나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함에 따라 올해 하반기에는 큰 반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기업의 수익가치에서 자산가치를 따지는 쪽으로 관심이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현금을 많이 쌓아놓은 기업이라던지, 이 현금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을 하거나 배당을 늘리는 등의 기업이 주목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저성장 기에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에 대한 주주 요구도 거세지는만큼 기업도 이런 전략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이 부사장은 전망했다.

그는 "자산가치가 높은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되면 '10년 투자 펀드' 수익률도 다시 좋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앞으로 10년도 변함없이 가치투자 철학을 지키고 실수를 줄이며 고객 수익만을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10년 투자 펀드' 고객 중 5년 이상 투자한 사람 비중은 67.5%에 달한다. 8년 이상 된 고객도 50%를 차지하고 10년 간 꾸준히 펀드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60대 한 고객은 "최근 수익률이 좋지 않아 속상한 마음도 든다"며 "하지만 '잘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펀드를 계속 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